'빅3' 병원으로 시작된 Me too‥병원문화 개선될까?

도제식 수련환경 속 조직문화 자체가 좁고 폐쇄적…부당행위 문제제기 자체 어려운 구조
조운기자 goodnews@medipana.com 2018-03-12 09:22
[메디파나뉴스 = 조운 기자] 보건의료계에게도 미투(Me too) 운동이 빠르게 번지고 있다.
 
연예계, 법조계, 정치계에 이어 미투 운동이 시작된 보건의료계가 연일 계속되는 폭로 속에, 이번 기회를 통해 쉬쉬하는 병원 문화 개선이 이뤄져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최근 서울대학교병원, 서울아산병원, 삼성서울병원 등 의료계 '빅3'병원을 시작으로 병원 내 보건의료 종사자들의 성폭력 문제가 드러나고 있다.
 
앞서 삼성서울병원은 지난 2016년 인턴이 선배 전공의(레지던트)로부터 성폭행 당한 사실을 병원에 알렸으나 조치는 차일피일 미뤄졌고, 미투 운동이 한창이던 지난달 27일에서야 병원은 해당 선배 전공의(현재 임상강사)를 해직한 사실이 드러났다.

최근에는 서울대 의과대학 정신건강의학과교실 학과 기획인사위원회 소속 교수 12명이 동료 A교수가 의대생과 간호사를 비롯한 병원 직원들에게 성희롱과 부적절한 성적 행위를 했다고 밝혀 파장이 일고 있다.

서울대병원 역시 A교수의 상습적 성폭력 의혹에 대해 여러 차례 신고를 받은 바 있으나 제대로 진상조사를 실시하지 않았고, 최근 동료 교수들의 폭로로 의사직업윤리위원회를 통해 진상 조사에 나선 것으로 나타났다.

빅3의 한 축을 담당하는 서울아산병원 역시 미투 운동을 피해가지 못했다. 최근 익명의 제보자는 이 병원 B교수가 1999년 전공의(인턴)를 호텔로 데려가 성폭행을 시도했으나, 해당 인턴이 완강히 저항하자 포기하고 호텔을 떠났다고 주장했다.

B교수는 버젓이 서울아산병원에서 교수 생활을 하고 있으나, 해당 피해인턴은 사건 이후 한국을 떠나 미국에서 의사 생활을 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보건의료계의 미투 운동이 사회적으로도 큰 충격을 주는 이유는 '선생님'으로 칭해지는 보건의료계 종사자들에 대한 배신감 때문으로 보인다.

인간의 생명과 신체를 다루는 의료인은 다른 전문 직종보다 엄격하게 직장윤리를 지킬 것이라는 이미지가 강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최근 사회 분위기 변화와 피해자들의 용기 있는 증언으로 드러난 그 내부 실상은, 전공의에 대한 교수 및 선배의 폭언·폭행, 간호사 선·후배 사이의 태움 등 타 직종보다 심하면 심했지 결코 덜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이런 실상 속에 보건의료계의 미투 운동이 다른 분야보다 늦게 시작된 것은 그 만큼 보건의료계의 문화가 페쇄적이고 억압된 문화임을 보여주는 반증이다.
 
실제로 미투 운동이 한창 시작될 초기 무렵, 많은 보건의료계 종사자들은 소리 낮춰 의료계 내부에도 은폐된 성희롱, 성폭행 문제가 많이 있으나, 특유의 폐쇄적 문화로 인해 이 문제가 드러나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고 소리 모아 증언해 왔다.

모 대학병원 A교수는 "미투 운동의 근본은 권력에 대한 저항이라고 본다. 그런데 보건의료계의 경우 남성 권력자들의 부당행위가 표출될 수 있는 구조 자체가 없다는 게 가장 큰 문제다"라고 지적했다.

그는 "어느 사회에나 이상한 사람은 있으나, 이들을 조기에 발견해 처단하고 문제가 반복되지 않도록 하는 저마다의 장치가 있다는 것이 중요하다. 하지만 순결하고 고귀한 보건의료계의 경우 수직적 조직 구조 속에 물을 흐리는 피해자의 목소리는 설 곳이 없다"고 말했다.

면허를 딴 특정 보건의료인력이, 도제식 수련 환경 속에 활동하는 조직 문화 자체가 좁고 폐쇄적이다 보니 부당행위에 대한 문제제기 자체가 어려운 구조라는 것.

실제로 병원 내 성추행을 경험했다고 밝힌 모 간호사는 "얼마나 오랫동안 참고 견뎌 왔는지 모른다. 다들 참으라고 말한다. 선배들도, 수 간호사들도, 동기들도 그냥 참고 견디라고 하다보니, 문제를 제기하는 내가 이상한 사람이 될 것 같았다"고 증언했다.

그는 "나 뿐만 아니라 실습 때부터 병원에 들어가고 나서도 크고 작은 사건이 주변에서 끊이질 않았다. 하지만 누구하나 목소리를 낸 경우는 없었다. 목소리를 내면 당연히 나갈 생각을 한 것이라고 생각해야 했다"며, "주변에서 용기를 내 폭로한 사례가 있었는데, 피해자는 병원에서 나가지만, 가해자는 내부에서 징계 정도로 끝나고 버젓이 일을 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 같은 증언은 통계를 통해서도 나타난다. 전국보건의료산업노동조합은 지난해 의료계 종사자를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의 결과인 '2017 보건의료노동자 실태조사 연구보고서'를 통해 의료계 10명 중 8명은 성폭력 피해를 당해도 '참고 넘어갔다'고 응답했다고 밝혔다.

이 가운데 정부는 보건의료계 성폭력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협회 차원의 신고센터를 운영해 신고 문화를 활성화 하고, 의료인 양성에 성폭력 예방 교육을 추가·강화한다고 밝혔다.

나아가 전공의 수련환경평가에 전공의에 대한 성폭력 사건에 대한 조직적 은폐, 2차 피해 등 부적절 대응이 확인될 경우 해당 의료기관에 과태료와 의료 질 평가지원금 감액 등의 제재 조치도 발표했다.

이에 대해 의료계는 피해자에 대한 2차 피해를 막기 위한 보다 구체적인 방안과 병원 내 조직 문화의 근본적 개선 없이는 앞으로도 미투 운동은 끝나지 않을 것이라는 지적이다.

의료계 한 관계자는 "피해를 당해도 말을 하지 않는 가장 큰 이유가 '보복'에 대한 두려움이다. 자신의 생존권을 쥔 권력자에 의한 피해의 경우, 오히려 피해자가 무고죄로 몰리거나, '물을 흐리는 미꾸라지'처럼 치부가 돼 병원에서 견디지 못하고 나가게 되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가해자에 대한 처벌과 재발 방지 대책도 중요하지만 피해자에 대한 보호와 2차 피해 방지를 위한 세심한 장치, 나아가 보건의료계 내의 수직적이고 페쇄적 문화 자체에 대한 개선만이 보건의료계 미투 운동을 끝낼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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