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계 피라미드 최하위 의대생‥법·제도 사각지대서 '고통'

의료계 권위주의 하에서 "만연한 인권침해…신고조차 힘들어"
'학생'이자 병원 '실습생', 역할과 지위 모호성‥보호받지 못해
조운기자 goodnews@medipana.com 2019-01-24 06:06
[메디파나뉴스 = 조운 기자] 의료계 도제식 교육 문화에서 파생된 피라미드식 권력 계층 구조의 가장 큰 희생양은 피라미드의 최하위에 있는 의과대학 학생들이었다.

의과대학 학생들은 학생이자 실습생으로서 중첩적 역할과 지위라는 모호성으로 법과 제도의 사각지대에 놓여 있어, 그간 심각한 인권 침해 실태가 외부로 알려지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최근 다수의 수련병원에서 그간 은폐되었던 전공의 폭행 사건 등이 수면 위로 올라와 사회적 충격을 주면서, 의료계 내의 폭언·폭행·성폭행 등 인권문제가 사회적으로 이슈가 됐다.

2017년 부산대병원 전공의 폭행 사건 당시 국가인권위원회(이하 인권위)는 직권조사를 시행하고, 병원 내 심각한 폭력 행위가 만연하게 된 배경에 폭력 문제에 대한 병원 당국의 관용적 태도와 비공식 절차를 통해 사건을 무마시키려는 관행 때문으로 판단했다.

특히 의료계의 권위주의 조직문화가 극단적인 형태로 나타난 전공의 폭력 및 인권침해가 전공의 단계에서 갑자기 시작되는 것이 아니라, 의과대학에서부터 시작되었다는 점에 집중했다.

심각한 의대생 인권실태‥의사도 전공의도 아닌 지위에서 보호 사각지대 놓여
 
인권위는 의과대학의 위계질서와 조직문화는 의과대학 교실에서의 교수-학생과의 관계뿐만 아니라 동아리, 동문회, 향우회에서의 선-후배 관계로까지 널리 만연해 있어서 각종 강요, 폭력, 성추행 등이 발생할 수 있는 토양이 되고 있다고 봤다.
 
이에 국가인권위원회의 인권단체 공동협력사업으로 (사)인권의학연구소가 대한 의과대학/의학전문대학원 학생협회(이하 의대협)와 함께 지난 2018년 4월부터 10월까지 40개 의과대학·의학전문대학원 의학과 학생을 대상으로 언어적/신체적 폭력과 강요, 성차별과 성희롱에 관한 설문조사와 심층인터뷰를 했다.

그리고 지난 23일 국가인권위원회 배움터에서 개최된 '의과대학 학생들의 인권상황 실태조사 결과발표 토론회'에서 나온 실태조사는 과히 충격적이었다.

의과대학 학생 10명중 5명(49.5%)이 '언어폭력'을 경험했으며, 16%가 '단체기합 등 신체적 폭력'을 경험했다고 응답했다. 10명중 6명(60%)은 모임이나 회식에서 '음주 강요'를 경험했다고 응답했다.
 

또한 여학생의 37.4%가 '성희롱'을, 여학생의 72.8%가 '성차별적 발언'을 경험했다고 답하였고, '전공과 선택에서 제한과 차별'을 경험했다고 응답한 여학생은 58.7%로 남학생보다 3.3배가 높았다. 특정 과에서는 여성을 선발하지 않는 전통을 학생들에게 공언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화영 인권의학연구소장은 이 같은 의과대학 인권실태 개선방안으로 ▲인권교육과 정기적 실태조사 ▲교내 권위주의 문화 철폐 ▲강력한 가해자 처벌 ▲철저한 피해자 보호 ▲성폭력, 성차별 예방을 제시했다.

특히 이 소장은 의사도 전공의도 아니라는 이유로 예비의료인인 의과대학 학생들의 인권 보호 관련 법조항은 전혀 없다는 점을 지적하며, 인권위에 "현재 추진 중인 의료법과 전공의법을 검토하고 병원실습 중인 의과대학생과 병원 교수들로부터 수업을 받는 의과대학생의 인권 보호 사항을 추가하도록 검토해야 한다"고 밝혔다.

나아가 의료기관평가인증원의 평가인증 기준과 한국의학교육평가원의 평가항목에 의과대학 학생들의 인권침해와 차별 문제 해결을 위한 내용을 포함하는 방안과 전공의 선발과정과 운영에 대한 실태조사의 필요성을 제안했다.
 
"피라미드식 권력 계층 구조 아래에서 의료계 인권문제 해결 불가능"
 
이날 토론자로 나선 김서영 의대협 부회장 당선자는 이번 실태조사에 대해 "암묵적이던 의과대학 인권실태가 수치화됐고, 심층면접을 통해 구체적인 사례가 수집되었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고 말했다.

김 부회장 당선자는 이 같은 심각한 의과대학 내 인권실태가 '위력'에 의한 인권침해라는 점을 강조했다.

실제로 인권침해 피해자 학생 중 단 4% 만이 학교 측에 신고했다고 답했는데, 침묵한 학생들의 246명이 진로에 부정적 영향을 두려워해, 259명이 추후 평판에 미칠 영향이 두려워서라고 밝힌 것으로 나타났다.

그 이유에 대해 "의료계에는 권력의 피라미드가 존재한다. 교수-펠로우와 전공의-의과대학 학생으로 내려오는 권력구조가 있는데, 학생은 가장 약한 존재이다. 의과대학에서 이 같은 관계는 성적, 진로를 결정하는 데 큰 영향을 미친다"고 지적했다.

따라서 의과대학 교육 및 실습 과정에서 평등하고 투명한 관계가 성립될 때, 실질적인 인권 문제가 해결될 것이라는 주장이다.

나아가 그는 의과대학 학생의 역할과 지위가 모호해 의과대학 인권문제에 대해 복지부는 교육부로, 교육부는 복지부로 그 책임을 떠넘기는 것에 대해서도 문제를 지적했다.

그는 "의대생 개개인의 인권은 공적인 가치를 가지고 있고, 의료계 공동체가 개입해서 시정해야 할 문제다. 인권문제가 결국은 의료계 권위주의 문화와 연결돼 있기 때문이다. 이에 침묵하는 것은 공동체가 묵인하는 것과 같다"며, "인권에 나중은 없다"고 즉각적인 개선 노력을 촉구했다.
 
제도적 법적 뒷받침 및 의료계 자정 노력 필요
 
뒤이어 토론자로 나선 교육부 대학학사제도과 김정훈 사무관은 "학교 차원의 자발적 예방노력을 강제하기 위한 방안으로서 학생에 대한 폭력의 유형과 범주에 따른 구체적 절차와 페널티 수위 등에 대해 의학평가원과 함께 논의하겠다"고 밝혔다.

복지부 의료자원정책과 권근용 사무관은 "의료계 인권문제는 의료계의 위계질서, 조직문화 때문이며, 그 원인이 우리나라의 열악한 의료 환경 때문인 부분도 있어, 결국 의료의 본질적 문제로까지 가게 된다"며, "무엇보다 인권문제를 신고할 수 있는 환경을 마련하는 게 최우선이라고 본다"고 말했다.

그는 "지난 전공의 폭행 사건으로 피해자가 용기를 낼 수 있는 공적 개입에 대해 고민했고, 이동 수련이나 비밀 보장, 조사 대응 의무화 등을 이뤄냈다. 이뿐 아니라 의료계 내에서도 자정 노력이 필요하다. 의과대학 학장단 모임, 의사협회, 교수로 구성된 의학회 등도 함께 고민하고 해결할 수 있는 상설 협의체가 마련돼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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