놓쳐지는 중증정신질환자
허술한 입원체계로 한 번, 급성기 병상 부족으로 또 한 번

사법입원·수가정상화 통해 급성기 보호병상에서 조기집중치료 가능하게 해야
조운기자 goodnews@medipana.com 2019-05-03 06:03
[메디파나뉴스 = 조운 기자] 정신질환자에 의한 연이은 사건·사고가 우리나라의 허술한 정신보건체계 때문이라는 지적이 이어지고 있다.

정신질환자에 대한 국민의 불안과 공포가 계속해서 커져가는 가운데, 도대체 어떤 결함이 있기에 중증정신질환자들이 제대로 치료받지 못하고, 끔찍한 범죄를 저지를 정도로 방치되는 것인지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10년 사이 상급종합병원·종합병원 급성기 정신과 병상 400개 줄어

 
대한신경정신의학회는 지난 2일 '안전하고 편견 없는 사회를 위한 중증정신질환 정책제안 기자회견'<위 사진>을 통해, 보통은 일반인보다 낮은 범죄율을 보이는 정신질환자의 범죄가 최근 국내에서 급증하고 있는 이유가 조기집중치료의 지연과 치료 중단으로 인해 발생한 것임을 강조했다.

정신질환에 대한 편견과 차별로 인해 정신질환자 당사자는 물론 가족과 지인들의 거부감으로 정신과 병원을 찾지 않아 조기치료가 어려운 경우가 많지만, 근본적인 바탕에는 시스템적인 문제가 크다.
 
먼저 저수가의 현실에서 우리나라 급성기 병상은 지난 10년 동안 붕괴되어 왔다.

학회에 따르면, 2011년 상급종합병원의 정신과 보호병동은 1,021병상에서 2018년 말 기준 857병상으로 약 200여개 가까이 감소했고, 종합병원의 경우에는 2014년 4,000여 병상에서 2018년 3,600여 병상으로 10% 감소했다.

이동우 학회 정책연구소장은 "10년 새 급성기 병상이 약 400여개 이상 감소하면서 입원 기간을 3~4주 정도로 한정할 때 연간 약 5,000명의 환자가 집중치료 후 빠른 회복의 기회를 박탈당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렇게 급성기 병상이 감소하는 이유는 바로 현실적인 이유 때문이다.

우리나라는 정신과에 대한 수가에서 급성기와 만성기를 따로 구분하지 않는데, 이 상황에서 상급종합병원 정신질환 입원 시 신체질환 입원 치료비의 평균 33%(종합병원의 경우 49%) 정도의 진료비가 지불되는 상대적 저수가 구조를 갖고 있다.

평균 입원 수가가 일반 입원 수가의 1/3에 불과한 현실에서 대학병원들은 환자를 보면 볼수록 손해를 볼 수밖에 없어, 결국 정신과 병상을 줄이고 있는 현실이다.

탈원화를 목표로, 급성기 병상에서 짧은 시간안에 집중치료하여, 지역사회 정신건강센터에서 관리하도록 하는 해외 시스템과 비그하면 완전히 거꾸로 가는 모습이다.

백종우 학회 이사는 "일본은 만성병상의 평균 연령이 60대 중반인데, 우리나라는 50대 중반이다. 그만큼 20대, 30대 중증정신질환자의 조기치료가 안되어 50대부터 만성기에 접어들고 있다는 것을 반증한다"며, "급성기 병상에서 환자가 조기치료된 뒤에 지역사회에서 회복, 재활할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들어야 하는데, 우리나라는 급성기 치료할 곳이 줄어들면서, 환자들이 제 때에 치료 받지 못해 금새 만성으로 접어들어 '수용'되는 방향으로 흐르고 있다"고 꼬집었다.

입원 절차 강화한 '정신건강복지법'‥조기치료 늦춰
 

우리나라 역시 지난 2017년부터 개정 정신보건법인 '정신건강복지법'을 통해 수용보다는 치료에 초점을 맞춰 '탈원화'를 추진하고 있다.

정신건강복지법의 주요 내용은 환자의 입원 절차를 강화하여 환자의 인권을 보호하고, 퇴원 후 정신질환자의 복지서비스를 강조하는 것이다.

문제는 지나치게 환자의 인권과 탈원화만을 강조하다보니, 환자의 적절한 치료가 이뤄지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실제로 현 정신건강복지법의 복잡한 비자의입원(강제입원) 절차는, 많은 중증정신질환자들의 조기치료를 지연시키고 있다.

특히, 정신과적 응급위기 발생 시 입원치료를 신청할 수 있는 절차가 실질적으로 보호자에 의해서만 가능하다보니, 이로 인해 치료가 필요함에도 치료 없이 방치되거나, 입원을 둘러싼 의견 충돌 등 다양한 2차적 위험이 발생하고 있다.

앞선 정신질환자 범죄 사건의 피의자들의 경우에도, 수 차례 자타해 위험 신호 속에 당사자의 의사에 반하는 비자의입원 시도가 있었으나, 부모가 의지가 없어서, 혹은 복잡한 법 규정으로 인해 요건을 통과하지 못해서 결과적으로 적절한 치료를 받지 못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렇게 조기집중치료가 필요한 환자들이 놓쳐지게 되면서, 결국 관리망에서 벗어난 중증정신질환자들은 병이 더욱 악화되어 범죄라는 극단적인 증상을 발현하게 되는 것이다.

이동우 소장은 "헌법 재판소 역시 적기에 정신질환을 치료하기 위해서는 강제 입원이 필요하다는 점을 인정하고 있다. 다만, 이 점을 악용하지 않기 위해서 환자의 인권을 최대한 침해하지 않도록 객관적인 제3자의 판단이 필요하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며, "이에 학회는 신속하게 환자의 입원 필요성을 객관적으로 판단할 사법입원 절차를 요구해왔다"고 말했다.

따라서 학회는 정신응급상황 등 비자의 입원치료 결정에 대한 공공체계를 도입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응급입원 및 이후 급성기 입원으로 이어지는 의사결정구조에 사법체계내 공공의사결정체계도입을 통해 비자의 입원을 보호자에게 맡겨두는 것이 아니라 국가의 공식 사법행정체계, 안전행정체계에서 정신건강전문가 및 지역의 보건행정 영역과 공식적 협력체계를 통해 결정하고 책임지고 수행하는 제도를 도입하자는 제안이다.

실제로 미국과 유럽은 사법입원제도를 통해 법원에서 자타해 위험이 있는 중증정신질환자의 비자의 입원의 필요성 유무를 판단하고 있다.

이에 학회는 '사법입원' 제도를 포함한 '중증정신질환 국가책임제'를 추진하여, 조기집중치료가 이뤄질 수 있는 입원 시스템 구축 및 실질적인 급성기 치료를 담당할 급성기 병상의 증가를 도모할 수가 정상화를 요구할 계획이다.


<© 2019 메디파나뉴스, 무단 전재 및 배포금지>'대한민국 의약뉴스의 중심'메디파나뉴스

관련 기사

[학회ㆍ학술] 최근기사

많이 본 뉴스

댓글 쓰기

실명인증

독자들이 남긴 뉴스댓글

조운기자의 다른 기사

로그인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