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수지 명예회장 "대화제약 창업, 인생에서 가장 뿌듯한 일"

성균관대 약대 공헌문집 통해 회고록 전해… "국민 건강에 도움주는 기업으로 오래 남아있길"
이호영기자 lhy37@medipana.com 2019-05-27 11:55
대화제약 창업자인 김수지 명예회장이 대화제약이 국민들의 건강과 복지에 도움을 주는 기업으로 오래 남았으면 하는 바람을 전했다.
 
최근 성균관대 약학대학이 펴낸 약학관 건립 10주년 기념 공헌동문 문집 '글로벌 리딩 약대를 향한 운명적 사랑'을 통해서다.
 
성대 약대는 약학관 건립 10주년을 맞아 그동안 약대 발전에 공헌한 동문들의 글을 모아 문집 형식의 책을 발간했다.
 
 
김수지 명예회장은 문집에 실은 회고록을 통해 자신이 살아온 일대기를 원고지 70여 장 분량으로 담담히 소개했다.
 
특히 김 회장은 동기동창 4명과 대화제약을 창업하고 이끌어 온 과정을 상세히 전하며 경영철학에 대해 강조하며 이목을 끌었다.
 
한국전쟁으로 인해 홀로 남은 어머니를 도와 7살때부터 새우젓을 사다 쌀과 바꾸는 장사를 시작했다는 김 회장은 고등학생 시절 어머니를 잃고 여동생과 생계를 걱정하며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과정에서 의약품과 접하게 됐다.
 
졸업 이후 이모의 소개로 약을 도매로 떼다가 시골 약국에 팔아보면 어떻겠냐는 제안을 받아 수원에서 하숙을 하면서 용인과 이천, 발안 등지의 약국에 의약품을 팔러다닌 것이 시작이었다.
 
그렇게 2년 만에 20여 만원을 모아 대학 진학을 꿈꾸게 됐는데 성균관대 약대는 약국을 상대하면서 의약품에 대한 지식이 있었기 때문에 선택할 수 있었다.
 
성균관대 약대를 졸업한 1969년 8월, 김 회장은 수유리 장미원에 있던 골덴약국을 신용 담보로 빌린 50만원으로 인수해 첫 약국 경영을 시작했다.
 
아침 7시부터 밤 12시까지 일하며 3년 6개월간 약국을 운영했지만 친구들과 어울리는 것을 좋아했던 김 회장은 돈이 모이지 않자 약국을 정리하고 의약품 수입판매회사에 취직을 하게 됐다. 동시에 성균관대 경영대학원도 입학했다.
 
그러나 회사 월급으로 대학 등록금과 생활비가 감당되지 않자 화공약품 시약을 제약사에 납품하는 일을 부업으로 시작했고 소위 대박이 나면서 '대진양행'이라는 수입상을 지인과 동업하게 됐다.
 
이후 당시 국립보건원에 다니던 친구인 김운장(현 대화제약 고문)과 약품 마케팅을 같이 하면서 제약사 공동창업을 본격적으로 논의했다. 이때 김운장의 부친인 김기용 씨가 경영하고 있던 모기향 등을 제조·판매한 대화제약 인수를 제안했고 회사 이름을 그대로 사용하기로 하고 입학 동기 4명이 창업을 하기에 이르렀다.
 
창업 이후 2년 후 동기 한 명이 개인사정으로 경영에서 손을 떼는 등 변화가 있었는데 1992년에는 중외제약에서 임원을 역임한 동기 이한구가 합류하면서 천군만마를 얻게 됐다.
 
다만 당시 정부가 우수의약품 제조 및 관리(KGMP) 강화에 나서면서 공장을 짓는 과정에서 부채가 늘어나 어려움이 컸던 상황은 기억하기 싫은 장면이다. 당시 매출액이 42억원이었는데 부채가 38억원이나 되면서 도산할 지경까지 이르기도 했었다.
 
이때 김 회장은 머리를 식히기 위해 남아메리카 여행을 떠났는데 볼리비아에 한 달여 체류하면서 다국적제약사들의 독점판매가 심하다는 점을 발견하고 볼리비아에 직접 의약품을 수출하며 틈새시장을 노렸고 세계적인 제약사들이 1년 만에 철수하는 사태도 벌어졌다.
 
2년 만에 국내로 돌아온 김 회장은 심기일전해 마케팅분야에 진력투구하며 대화제약의 발전에 공을 들였다. IMF 위기에서도 R&D 투자를 더 과감히 해 세계 최초의 먹는 항암치료제 개발에 성공해 중국에 기술수출해 연 40억원을 벌었다. 국내 최초의 임신진단시약 개발과 OEM 파스시장의 70% 이상을 점유하기도 했다.
 
2000년대 들어서는 신약개발연구소를 개설했고 횡성에 공장부지를 매입했고 2003년 코스닥시장에 등록하며 중견제약사로 발돋움하게 됐다.
 
 
김 회장은 "올해로 창립 34년이 되며 강산이 세번 바뀌는 세월 동안 온갖 우여곡절과 시련 끝에 중견 제약사로 우뚝 서게 된 것을 생각하면 감개가 무량하다"며 "나의 분신이나 다름없는 대화제약이 무궁무진하게 발전하기를 바라는 마음이 간절하다"고 소회를 전했다.
 
그러면서 김 회장은 "돌이켜 생각해보면 20대 초반에 나홀로 도매상으로 출발해 40대 초반 평생 동지인 친구들과 함께 제약사를 인수해 이만큼 성장시킨 것은 무에서 유를 창조한 것과 무엇이 다르랴"라며 "내 인생에서 가장 뿌듯하고 보람된 일이 아닐 수 없다"고 회고했다.
 
평생 일궈온 회사에 대한 애정을 드러낸 김 회장은 남은 소원 역시 회사가 오래 유지할 수 있기를 바랐다.
 
김 회장은 "이제 소원은 아들이나 후배들이 창업동지들의 유산인 대화제약의 경영을 잘 해나가면서 국민들의 건강과 복지에 도움을 주는 기업으로 오래 남았으면 하는 것"이라며 "초창기부터 나와 고생을 함께 해준 친구들과의 우정이 영원이 이어지길 바란다"고 강조했다.
 
그는 "평생 견지해 온 경영찰학은 '매사에 겁먹지 말라. 반복학습이야말로 자신을 강하게 하는 방법이고 최대의 무기'라는 것과 '남에게 먼저 얻으려 하지 말고 먼저 베풀라'는 것"이라며 "여력이 있는 한 내가 일군 일정한 재산을 사회에 환원하고 싶다. 어차피 빈손으로 왔다가 빈손으로 가는 게 인생일진대, 주저할 이유는 없다고 생각하며 살고 있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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