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행 위협에도 퇴로 없는 의사들 "진료거부권 공론화해야"

'정당한 사유' 있는 경우, 진료거부 가능…"의료법 있지만 사문화"
박민욱기자 hopewe@medipana.com 2019-09-04 11: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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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디파나뉴스 = 박민욱 기자] 올해 초 강북삼성병원 임세원 교수 사건 등의 여파로 의사들도 상황에 따라서는 진료를 거부할 수 있어야 한다는 의견이 재차 제기됐다.

현행 의료법은 '정당한 사유 없이 진료를 거부하지 못한다'고 규정하고 있으며, 이를 위반하면 1년 이하 징역이나 1,000만 원 이하 벌금형에 처할 수 있다.

이런 이유에서 의사들은 환자들이 의뢰한 진료를 거부하지 못하고 있는 상황. 따라서 적어도 의료인에게 폭력을 행사한 가해자 등 위험이 예상될 경우, 진료거부를 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 의료계의 주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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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의사협회 의료정책연구소(소장 안덕선, 이하 의정연) 이얼 책임연구원<사진>은 4일 '진료거부금지 의무의 현황과 과제' 보고서를 통해 이같이 밝혔다.

이 연구원은 "진료거부금지 의무는 직업 윤리적 의무인데 이를 범죄화하는 것은 타당하지 않다"며 "응급의료법상 응급환자에 대한 진료거부금지 의무는 존속시키되, 의료법상 일반환자에 대한 진료거부금지 의무와 이에 관한 처벌조항은 삭제해 의료계약에 관한 불필요한 논쟁을 불식시키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의료법 및 하위법령에서 의료인이 진료를 거부할 수 있는 정당한 사유를 구체적으로 명시하는 것도 한 방법이기는 하나 정당한 사유에 대한 신중한 검토가 선행되어야 한다"고 덧붙였다.

지난해만 해도 전북 익산 소재 한 응급실에서 의료인이 폭행을 당한 사건이 알려졌으며, 강릉에서 한 환자가 가방에서 망치를 꺼내 의사를 향해 휘둘렀다.

나아가 경북 경산에서는 처방에 불만을 품은 환자가 병원 바닥에 불을 지르는 사건이 있었으며, 전북 남원의료원 응급실에서는 눈 주위 상처 치료를 위해 다가간 의사에게 환자가 칼을 꺼내 휘두르는 일도 있었다.

이처럼 일부 환자들에게 위협을 당하는 의사지만, 진료 거부 시 불이익이 있기에 울며 겨자 먹기로 위협을 감수해야 하는 경우가 많다.

의료법 제15조 제1항에 따르면 의료인 또는 의료기관 개설자는 진료나 조산 요청을 받으면 정당한 사유 없이 거부하지 못한다.

또한 의료법에는 '정당한 사유가 있는 경우'에는 진료거부가 가능하다고 규정돼 있다. 하지만 이 '정당한 사유'를 구체적으로 명시하고 있지 않아 법의 해석과 적용에 어려움이 있는 상황.

우리나라 법원은 진료거부 당시 의료인 측에는 어떠한 사정이 있었는지, 환자 측에는 어떠한 사정이 있었는지, 기타 참고할만한 정황이 있었는지 등을 종합해 진료거부금지 의무 위반을 판단하고 있다.

그러나 의료인에게 진료거부금지 위반죄가 인정된 사례는 찾기 어려운 것이 현실.

이 연구원은 "이는 현실적으로 의료현장에서 의료인이 의료기관을 방문한 환자에 대해 진료를 거부하는 사례가 드물고, 만약 진료를 거부당한 환자는 다른 의료기관을 방문하여 필요한 의료서비스를 받을 수 있기 때문에 실제 진료거부의 문제가 발생할 가능성이 현저히 낮기 때문이다"고 분석했다.

판례상 확인할 수 있는 진료거부의 문제는 ▲환자가 전원 또는 퇴원 조치에 대해 불만 제기 ▲의료기관을 방문하는 과정에서 사망한 경우 ▲의료기관의 폐업에 대해 불만을 제기하는 경우 등에서 발생한다.

이 연구원은 "현재 진료거부금지 조항은 상징적으로 존재한다고 봐도 무방하며, 퇴원 조치의 정당성을 확인하기 위한 행정력의 낭비만 초래할 뿐이다"며 "오히려 진료거부금지 조항을 악용하여 환자 측에서 의료인에게 마약류 의약품과 같은 부적절한 처방을 요구하거나, 의료기관에서 난동을 피우는 등의 부작용이 발생할 가능성도 적지 않다"고 지적했다.

해외의 경우, 일본은 우리나라와 동일하게 의사법에서 진료거부금지 의무를 규정하고 있으나, 이는 의사의 진료의무를 강조하기 위한 선언적 규정으로서 기능할 뿐 진료거부에 관한 처벌 조항은 없다.

의료전문직 자율규제가 발전한 미국 및 유럽의 주요 나라에서는 진료거부에 관한 문제를 의사의 직업윤리 영역으로 본다. 각 나라의 의사협회는 스스로 제정한 의사윤리지침 등에서 계약자유의 원칙에 따라 환자가 의사를 선택할 권리가 있듯이 의사에게도 환자를 선택할 권리를 인정하고 있다.

특히 환자가 폭력적인 행위를 하는 경우, 마약류 등 부적절한 치료를 요구하는 경우 등에 있어서는 당연히 진료거부가 가능한 것으로 인정되고 있으며, 낙태, 피임 등과 같이 윤리적인 판단이 개입될 수밖에 없는 영역에서도 의사의 진료거부가 가능하다는 공감대가 형성되고 있다.
 
이 연구원은 "진료거부금지 의무에 관한 국내·외 현황을 살펴봄으로써 진료거부금지 조항의 정당성을 검증해야 하며, 공론화를 통해 합리적인 가이드를 개발해 건전한 의료계약 문화를 촉진하고, 의료인의 직업행사 자유를 보장함과 동시에 국민의 건강권을 보장할 수 있는 합리적인 방안을 개발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의협은 의료전문가단체가 주도하여 진료거부의 정당한 사유에 대한 논의를 공론화하고 의료현장의 실정을 반영하여 정당한 사유를 구체화하도록 노력해야 한다. 이를 토대로 의사윤리지침을 개선하는 등 의료윤리를 확립하고, 구체적인 지침을 회원에게 제공함과 동시에 이를 홍보함으로써 사회적 합의를 이끌어낼 수 있을 것이다"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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