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취전문간호사' 역할 증대 꾀하지만‥'직역 갈등' 골 깊다

마취과 전문의 부족으로 마취전문간호사 활성화 주장‥마취과학회 "사실과 다르다" 반박
조운기자 goodnews@medipana.com 2019-10-24 06:04
[메디파나뉴스 = 조운 기자] 법의 모호한 경계 위에서 위태로웠던 마취전문간호사들이 '전문간호사 업무범위 법제화'를 통해 역할 증대를 꾀하고 있다. 
 
하지만 마취통증의학과 전문의와의 첨예한 직역 갈등이 커다란 장벽이 되면서, 향후 마취전문간호사의 역할 정립이 쉽지만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지난 23일 대한간호협회와 마취간호사회가 국회의원회관 제9간담회의실에서 '마취전문간호사 역할 정립을 위한 토론회'를 개최했다.
 
 
이날 간호계는 오는 2020년 3월부터 시행되는 전문간호사 업무범위 법제화 의료법을 통해 '불법 의료행위'로 낙인찍혀 임상 활동에 제약을 받고 있는 마취전문간호사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날 발제를 맡은 미국 남부 미시시피대학교 공미정(Michong Kong Rayborn) 교수는 미국과 비교해 허술한 우리나라 마취 관련 의료인 관리 실태에 문제를 제기했다.

현재 미국 마취전문간호사, 마취전문의 등 마취 제공인력들은 석사학위와 박사학위 수준의 교육 프로그램을 마친 뒤 국가자격시험을 합격해야 하고, 명확하게 수립된 업무범위 하에서 업무를 하도록 정부 관리 아래에 있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지난 2003년 의료법 안의 '전문간호사' 제도 안에 '마취전문간호사'를 인정하여, 2005년부터 그 자격을 법으로 정하고 있을 뿐, 마취 제공인력의 행위에 대한 법적 보호 장치는 물론 정부 차원의 양성과 관리 등도 전혀 이뤄지지 않고 있는 실정이다.

특히 공 교수는 "현재 마취간호사 교육기관은 국내에 가천대학교 단 한 곳이며, 한 해에 10명 이내에 마취전문간호사가 배출되는 실정"이라고 지적하며, "이처럼 한 해에 배출되는 마취간호사 수가 극히 소수에 한정되면서, 병원들은 적은 수의 마취간호사와 수련의를 대신할 수 있는 인력을 찾기 위해 일반 간호사에게 마취제공 인력 훈련을 시키고 있다"고 설명했다.

현재 우리나라에서 마취를 수행하는 간호사는 자격을 갖춘 일부 마취전문간호사와 병원에서 마취전문의에게 훈련을 받아 업무를 수행하는 마취과 간호사, 마취간호사, 회복실간호사, 수술실간호사 등 다양한 타이틀로 불리며 업무 행태도 천차만별로 나타났다

이들 대다수가 병원에서 마취전문의들에게 훈련을 받은 것은 사실이나, 업무 범위나 가이드라인이 없고, 국가고시를 합격해 마취업무 제공자로서 자격을 갖춘 것도 아니라 환자 안전에 위협을 가할 수 있는 상황이다.

실제로 임상 현장에서는 마취통증의학과 전문의 부족으로 2016년까지 배출된 634명의 마취전문간호사 중 절반가량이 마취과 전문의가 상주하지 않는 병원에서 근무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하지만 지난 2010년 대법원이 마취전문간호사의 직접 마취행위가 무면허 의료행위라는 해석을 내 놓으면서, 그간 10년 동안 전문간호사의 마취행위는 법적 소송의 대상이 되어 전문간호사 활동에 제약이 걸려있는 상태다.

김미숙 간협 마취간호사회 정책위원은 "실제 임상 현장에서 마취과 전문의가 부족해 '전문간호사' 자격이 없는 일반 간호사들을 교육시켜 마취과 업무를 시키고 있다"며, "법적으로 업무범위를 명확히 하여 전문간호사의 활동을 보장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김인상 보은한양병원 대표원장 역시 지방 중소병원 마취과 전문의 부족 문제를 언급하며, 마취전문간호사제도의 활성화 필요성에 공감을 표했다.

김 원장은 "마취과 전문의들이 통증의학과 개원 등으로 빠져나가면서, 지방 병원에서는 수술을 제 때 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일각에서는 정형외과 의사가 따로 마취를 배우는 경우도 있다"고 지적했다.

하지만 "의사 홀로 마취와 수술을 동시 진행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 의사는 수술에 몰두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에 현장에서 마취전문간호사가 필요성을 절실히 느끼고 있다"고 말했다.

정영호 대한병원협회 부회장은 마취간호사제도에 대한 의사 직역의 견제 등을 의식하여, 미국식 마취전문가 제도가 국내에 고스란히 정착되기는 어려울 것이라는 생각을 밝혔다.

다만, 병원 경영자 단체인 병원협회의 입장에서 "직역 간 업무가 지나치게 분절되어 있고, 업무 영역 간 벽이 공고할수록, 병원이 환자에게 제공할 수 있는 서비스는 지나치게 비효율적이 된다"고 언급하며, "병협은 직역 간 업무의 유연성과 협업 체계를 지향한다"고 말했다.

그는 "10년 안에 초고령사회가 된다고 하는데, 그러면 보건의료 모든 환경이 지금과 달라질 것이고, 고비용 구조로 국민 건강을 책임질 수 없게 된다. 따라서 반복적이고 단순한 업무, 어느 정도 숙달된 전문가가 수행할 수 있는 의사의 업무는 전문 직역에게 그 직무를 위임하고, 협업할 수 있도록 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나아가 현실적으로 직역 간 이해관계 갈등의 핵심으로서 서로 양보하는 부분이 있어야 함을 강조했다.

한편, 이날 토론회에는 비공식적으로 마취통증의학회 관계자가 참석해 발언을 이어갔다. 해당 관계자 A씨는 마취전문간호사 제도가 자본주의의 논리에 따른 것이며, 이들의 주장과 달리 마취통증의학과 전문의가 전혀 부족하지 않다고 반박했다.

A씨는 "우리나라에서 연간 210만 건의 마취가 이뤄지는 데, 마취과 전문의가 2,000명만 투입되도 다 할 수 있다. 그런데 현재 마취과 전문의는 5,800명에 달한다"며, "그럼에도 2013년 이후로 마취과 전문의의 일이 줄었다. 의료기관에서 전문의를 고용하는 데 대한 비용 부담으로, 마취과 간호사 등을 고용해 마취과 전문의의 역할을 대체하고 있기 때문이다"라고 꼬집었다.
 
또한 A씨는 "환자의 안전을 제 1순위로 생각할 때, 환자입장에서 마취과전문간호사가 마취를 하길 원치 않을 것"이라며, "전문적인 마취과 전문의가 해야 한다"고 반발했다.

이 같은 첨예한 갈등 속에 보건복지부 홍승령 간호정책 TF팀장은 마취전문간호사 제도 활성화에 대해 명확한 답을 내리지 못했다.
 
홍승령 팀장은 "내년 3월까지 마련해야 하는 전문간호사제도 관련 시행규칙을 위한 보건복지부의 연구용역이 마무리될 때까지 다양한 의견을 수렴하겠다"고 애매한 답변만을 내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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