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복된 의약품 이슈, 약무행정판 '징비록' 속에도 있었다

이창기 박사, '약무행정 외길 40년' 저서 통해 '메사돈 파동, 약효 논란' 등 회고
"그동안의 경험을 남겨 같은 길을 걷는 후배들에게 도움되길" 강조
이호영기자 lhy37@medipana.com 2019-11-19 06:06
조선시대 학자 류성룡이 임진왜란이라는 가슴 아픈 역사를 기록, 후환이 생기지 않도록 대비한다는 취지로 쓰여진 '징비록'은 현재까지도 역사의 경고를 강조하며 널리 읽히고 있다.
 
뼈아픈 과거를 겪었지만 왜 현재에도 똑같은 역사가 반복되는지에 대한 답을 찾기 위한 까닭이다.
 
직접적인 비교를 하기는 어렵지만 의약품 분야 정책 역시 초창기에 비해 많은 발전을 겪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과거의 아픈 기억이 반복되고 있다.
 
최근 보건복지부의 전신인 보건사회부에서 약정국장 등을 역임하며 40여 년간 공직에 종사한 이창기 박사가 펴낸 '약무행정 외길 40년'은 그래서 특별한 의미를 지닌다.
 
의약품에 대한 국가관리 시스템이 미비했던 1959년 공직을 시작한 이창기 박사가 경험한 약무행정 업무는 의약품 규제 역사의 시작이자 현재에 대한 거울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 이 박사가 저서를 통해 서술한 다수 내용들은 수십 년 전의 이야기지만 현재 벌어지고 있는 마약사건부터 잇단 의약품 품질 문제, 약효 재평가 이슈 등과 궤를 같이 하고 있다.
 
이 박사는 "약학대학을 졸업하고 약무행정 분야에 종사하면서 여러 경험들을 하게 되었고, 때로는 큰 보람을, 때로는 아쉬운 점이 남기도 했다"며 "그동안의 경험을 기록으로 남겨, 같은 길을 걸어가는 후배들에게 조금이라도 참고가 되기를 바란다"고 강조했다.
 
◆ 메사돈 파동의 산증인… 사회문제인 마약류 규제 강화 선봉장
 
이 박사의 기록 중 현 시대와 가장 닮아있는 사건은 일명 '메사돈 파동'으로 불린 마약 관련 사건이다.
 
당시 제약사에서 제조한 의약품 중에 마약이 함유된 부정의약품이 수년 동안 시중에 범람해 마약중독의 위해와 사회적 논란이 컸지만 과학적 근거를 제시하지 못해 어려움을 겪고 있었다.
 
이때 국립과학수사연구소 연구사로 근무하던 이 박사는 우연히 약국을 개업한 친구를 통해 효과가 좋다는 진통제 이야기를 듣고 호기심에 직접 실험해 성분을 찾아내는 과정에서 비방성분이 마약성분이라는 가정을 하게 됐다.
 
이후 마약의 정체를 밝혀내기 위해 갖은 노력을 거쳐 결국 합성마약인 메사돈을 분리할 수 있었다.
 
이러한 결과를 밝혀낸 이 박사는 제약사들로부터 받을 위협과 방해공작 등이 두려웠지만 마약피해를 막기 위해 결국 연구소장을 통해 보고하며 세상에 드러냈다.
 
결과적으로 15개 제약사에서 생산해 낸 20여 종의 진통제가 마약으로 밝혀졌고 진통제 주사를 맞으면서 효과가 좋아 계속 사용하게 된 사람들은 마약중독이 되어 버렸다는 사실이 드러난 충격적인 사건으로 기록된다.
 
이에 이 박사는 "당시 당국에서는 진통제 정체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해 이 약이 만연되는 것을 막지 못했고 악덕업자들은 진통제 속에 마약을 넣어 치부하는 타락한 윤리관을 보여줬다"고 전했다.
 
메사돈 사건은 정부의 대책 마련으로 이어졌고 메사돈 원료인 디페닐아세토니트릴과 디메틸아미노클로로프로판을 마약으로 지정했고 제약사에 대한 대대적 정비작업과 함께 마약단속을 강화함으로써 국제적으로 마약관리가 잘 된 나라로 인정받게 된 계기가 됐다.
 
 ▲ 메사돈 검출공로로 대통령 소성훈장을 받고 있는 이창기 박사 모습
 
이 박사의 마약에 대한 관심을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1970년대 초 국립보건원 마약시험과장으로 근무하며 한국산 대마 성분규명 연구에 전념했고 국산 대마 중에도 환각작용이 있는 성분이 함유되어 있다는 사실을 확인해 발표하기도 했다.
 
당시 국내 마약법에서 한국산 대마를 마약으로 해석할 경우 자유롭게 재배해 온 농민들이 범법자가 되므로 법령을 정비했다. 국내 실정에 맞는 마약류 규제를 위해 마약과 향정신성의약품의 정의 등을 정비하는 것도 이 박사의 몫이었다.
 
이와 관련 이 박사는 "그 당시 이미 10년 이나 20년을 예상해 각종 마약류가 끊임없이 사회문제가 되는 것을 볼 때 만약 그때에 마약류 규제를 강화하지 않았더라면 지금은 어찌됐을까 하고 생각하게 되며 최선을 다했던 것이 보람과 긍지로 여겨진다"고 소회를 전했다.
 
◆ 여전한 의약품 품질 이슈… "공직자, 엄격한 품질관리 해야" 
 
GMP 제도가 자리를 잡고 높은 기술력을 갖췄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제약업계의 이슈는 제품 품질에 있다. 우수의약품을 위한 시설과 제도가 마련되어 있지만 간간히 나오는 품질 이슈는 계속되는 고민일 수밖에 없다.
 
이 박사가 보사부 약정국장으로 일할 당시에도 의약품 품질 관리는 가장 큰 화두였다. 미국에서 1963년 최초 제정된 GMP(우수의약품 제조관리기준) 제도는 국내에서 1977년 KGMP 기준을 제정해 자율적으로 실시하도록 권장했다.
 
이 박사가 약정국장으로 부임한 1981년은 KGMP의 시행을 앞두고 제도 정착을 위해 고심했던 시기였다.
 
KGMP 정착을 위해 이 박사의 고민의 결과는 KGMP 기준 실시업소에 대한 행정 지원을 통해 우대조치해 조기 정착을 유도하고 KGMP 기준에 적합한 의약품제조 수탁업종을 신설해 KGMP 기준을 갖추지 못한 업소는 수탁제조업소에서 위탁제조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당시 막대한 시설투자와 관리비 부담 증가로 문제가 발생할 수도 있고 투자능력이 없는 중소업소의 존립기반도 상실할 우려가 있었기 때문이다.
 
중소업소는 KGMP 기준을 갖춘 업소나 수탁제조업소의 시설을 활용해 위타제조 하도록 길을 터주려는 의도였다.
 
그러면서 준비기간을 거쳐 1985년 4월 최초로 동아제약, 유한양행, 부광약품이 KGMP 적격업소로 지정됐고 이후 지속적으로 GMP 적격업소 지정이 이어지며 1995년 188개 업소가 지정됐다.
 
이에 이 박사는 "국내에서 불량의약품이 사라지게 됐고 국제적으로 우리나라 제약수준이 향상돼 국제 경쟁력을 갖게 되고 국산의약품의 수출도 늘어나게 됐다"며 "시간이 흘러 중소업소들이 무리하게 KGMP 투자를 하면서 일부 업소가 어려움을 겪었다는 말을 듣게 됐는데 당초 구상한 방안처럼 추진되지 않아 아쉬움이 남는다"고 전했다.
 
또 이 박사는 "의약품 품질에 대한 1차적 책임은 제조업자에게 있지만 유통되는 제품에 대한 품질관리의 책임은 이를 감시하는 공직자에게 있다"며 "공직자는 국민보건상의 위해를 방지하기 위해 엄격하게 품질관리를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 의약품 유효성·안전성 인식 과제… 약효재평가 제도 추진으로
 
최근 치매 치료에 사용되는 콜린알포세레이트 제제에 대한 재평가 이슈가 뜨거운 것처럼 당시에도 약효재평가에 대한 관심이 컸다.
 
이 박사는 약무과장 시절 장기계획을 세워 추진한 약효재평가 사업에 대한 애착을 드러냈다.
 
약효재평가가 처음으로 실시되던 당시 제약산업은 10여 년간 연평균 28.5%의 생산신장을 보였는데 자연히 오남용 또는 부작용과 약효에 대한 비판이 높아졌다.
 
1961년 벌어진 충격적인 진통제 '탈리도마이드' 사건 이후 세계 각국에서 의약품 부작용에 대한 여론이 고조됐고 의약품 유효성과 안전성에 대한 인식은 공통의 과제가 됐다.
 
이 같은 분위기 속에서 이 박사는 약효재평가에 대한 중요성을 인식해 1974년 장기계획을 수립했고 다음 해부터 약효재평가를 할 수 있도록 이에 필요한 예산 확보 등 제반 여건을 갖춰나갔다.
 
전 의약품을 약효재평가 대상으로 하면서도 단미제(단일제) 6백여 종의 성분, 6천여 품목을 1975년부터 1981년까지 7년간 재평가를 하도록 계획을 세웠고 실제 첫 해에는 항균제, 진통제, 신경안정제, 비타민제 등 19개 성분, 460품목에 대해 재평가를 실시했다.
 
이후 단미제는 1981년까지 모두 80개 효능군 629개 성분, 5,934품목의 약효재평가를 완료했고 그 결과 약효가 없는 것으로 판정된 21개 성분 제제를 허가 취소했고 2,268개 효능을 허가사항에서 삭제하도록 조치했다.
 
이 박사는 약효재평가를 통해 의약품을 믿고 복용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었다는 점에서 보람을 느낀다고 소회를 전했다.
 
이 박사는 "의약 전문인이 당국의 허가사항대로 믿고 투약할 수 있고 국민이 마음놓고 의약품을 복용할 수 있는 결과를 가져오게 된 것"이라며 "약효재평가에 대한 남다른 감회와 보람을 느끼고 있다"고 평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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