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대표 '사회적 기업' 유한양행…시작은 유일한 박사

[사회적 기업의 '좋은 예' 유한양행-①] 창업자의 신념이 이어지다
'건강한 국민만이 잃었던 주권 되찾을 수 있어'…민족 위해 평생 헌신
김창원기자 Kimcw@medipana.com 2019-12-02 06:07
국내에서 '사회적 기업'을 말할 때 빠지지 않고 꼽히는 기업이 바로 유한양행이다. 제약업계는 물론 모든 기업을 대상으로 했을 때에도 크게 다를 것은 없다.
 
실제로 유한양행은 한국능률협회커설팅이 조사·발표하는 '한국에서 가장 존경받는 기업'에 16년 연속 선정돼 이러한 분위기를 반영하고 있다.
 
이처럼 유한양행이 사회적 기업으로 자리 잡을 수 있었던 것은, 故 유일한 박사가 유한양행 창업 당시부터 지키고자 했던 신념 때문이다.
 
♦︎'건강한 국민만이 잃었던 주권 되찾을 수 있어'
 
 ▲유일한 박사
1895년 평양에서 태어난 유일한 박사는 1904년 미국으로 건너가 네브라스카주의 커니라는 작은 농촌도시에 정착했다.
 
이후 미국에서 학창시절을 보낸 것은 물론 직장생활을 거쳐 자신의 사업체까지 설립해 운영했으며, 다른 한편으로는 한인소년병학교에서 민족정신을 배우고 1919년에는 한인자유대회에서 주축으로 활동하며 민족혼을 지켜갔다.
 
이러한 시절을 보낸 유일한 박사는 미국에서 배운 지식으로 무엇을 해야할 것인지 깊이 생각했고, 기업의 길을 택하는 것이 자신의 길이라고 결론내렸다.
 
당시 유일한 박사는 일제 식민치하에서 가난과 질병으로 고통 받는 우리 민족의 현실을 보고 1926년 귀국길에 올랐고, '건강한 국민만이 잃었던 주권을 되찾을 수 있다'는 신념으로 유한양행을 설립하기에 이르렀다.
 
유한양행은 국민 건강에 도움이 되는 우수의약품을 국내에 도입하는 것은 물론 1933년 '안티푸라민'을 개발하는 등 독자적인 근대식 제약기업으로 발전한다.
 
특히 유일한 박사는 1936년 개인 소유였던 유한양행을 법인체 주식회사로 전환함으로써 '기업은 사회의 소유'라는 생각을 실천에 옮기게 된다.
 
 ▲소년 시절 유일한 박사 모습(앞줄 맨 오른쪽).
 
유일한 박사의 행보는 여기서 그치지 않고 독립운동까지 이어졌다.
 
당시 한국의 독립 지도자들은 태평양전쟁에서 일본이 패망할 것이며, 그렇게 되면 우리나라도 독립하게 될 것이라고 판단했다. 따라서 우리도 전쟁에 가담해 싸워야 한다고 주장했고, 임시정부도 광복군을 한반도에 투입할 계획을 세웠다.
 
 ▲필라델피아 한인자유대회를 마치고 행진하는 모습.
 
이 같은 계획의 일환으로 미국에 있는 민족지도자들은 청년들을 모아 '맹호군'을 창설해 태평양전쟁에 참가하기로 했는데, 유일한 박사는 맹호군 창설에 독립운동가 김호 선생과 함께 주축이 돼 조직 및 재정을 담당했던 것이다.
 
뿐만 아니라 이 시기에 유일한 박사는 미국 OSS가 계획한 국토수복작전인 '냅코작전(NAPKO Project)'에 참여하는 등 독립운동에 헌신하는 한편, 전후 새로운 기업 구상과 자기성찰의 시간으로 삼았다.
 
♦︎광복 이후 교육 통한 사회환원 집중…전문경영인 시대 열어
 
광복 이후인 1946년 7월 미국에서 귀국한 유일한 박사는 유한양행을 재정비, 사장과 회장, 대한상공회의소 초대 회장으로 활동하면서 민족 경제 발전에 이바지하게 된다.
 
 ▲유한공고 내 유한동산 초기모습.
 
이에 더해 유일한 박사는 교육 사업에도 공헌하게 되는데, 1952년에는 고려공과기술학교를, 1964년에는 유한공업고등학교를 설립해 운영했다.
 
당시 우리나라에 부족한 기술인력을 육성하기 위해 학교를 설립했던 것으로, 모든 학생에게 학비와 숙식비를 무료로 제공하고, 교육과정에 실습을 강화해 실질적인 기술인력을 양성하는데 집중했다.
 
이 과정에서 유일한 박사는 개인 소유주식을 각종 장학기금으로 출연하는 등 자본의 사회환원에도 힘을 썼고, 서거 1년 전인 1970년에는 개인주식 8만3000여 주를 기탁해 현재 유한재단의 전신인 공익재단 '한국사회 및 교육원조신탁기금'을 설립해 지속적인 교육사업의 기틀을 마련했다.
 
1969년에는 기업인으로서 한 획을 긋기도 했다. 기업의 제일선에서 은퇴하면서 혈연관계가 없는 전문경영인에게 경영권을 인계해 전문경영인 시대의 서막을 열었던 것이다.
 
 ▲유일한 박사 영전에 헌화하는 유재라 여사.
 
또한 한국에서 최초로 종업원 지주제를 실천하는 등 우리나라의 기업 경영사에 남을 선진적인 일들을 행동으로 옮기는 족적을 남겼다.
 
이처럼 평생을 조국의 독립과 발전에 기여해 온 유일한 박사는 1971년 3월 타계했으나, 그의 신념은 오늘날의 대한민국에서 또 다른 모습으로 이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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