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명의료결정법 시행 2년‥의료계 "웰다잉 정착, 갈 길 멀다"

대형병원마저 환자자기결정권 행사 40% 내외‥경직된 제도로 법 목적성 결여
조운기자 goodnews@medipana.com 2020-05-21 06:00
[메디파나뉴스 = 조운 기자] 연명의료결정법이 시행된 지 2년이 지났지만, 의료 현장의 실무자들은 법의 목적이었던 환자의 자기결정권 실현 등 '웰다잉 문화'의 정착은 실종됐다는 목소리다.
 

지난 20일 '웰다잉 문화조성을 위한 국회의원 모임(공동대표 원혜영‧정갑윤)'이 국회의원회관 제2소회의실에서 '웰다잉 문화조성의 현 주소와 과제' 세미나를 개최했다.

연명의료결정법은 회생 가능성이 없는 환자가 자기 결정이나 가족의 동의로 연명치료를 받지 않을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을 담은 법으로, 지난 2016년 2월 3일 제정되어 2017년 8월 4일 시행되어 1년 만에 두 번의 일부개정이 진행됐다.

해당 법의 핵심은 환자의 '자기결정권'을 존중하여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보호하는 것으로 시행 초기 '웰다잉법', '존엄사법' 등으로 알려졌으나, 막상 의료현장에서는 사전 준비, 교육 미흡 및 인력 부족 등의 이유로 환자의 자기결정권이 사라지는 사례가 발생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발제에서 이일학 연세대 의과대 의료법윤리학과 교수는 비교적 인프라가 잘 갖춰진 대형병원마저도 환자의 자기결정권 행사가 40% 내외에 머무르는 점을 지적하며, "연명의료결정법이 시행 2년이 지났지만 눈에 띄는 큰 변화를 발견하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그는 "현 시점에서 제도의 유지와 운영, 개선에 있어 가장 큰 역할은 의료진에게 있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알권리, 결정한 권리를 주장할 준비가 돼 있지 않은 환자, 환자에 대한 책임을 부정하지 못하지만 부담스러워하는 바쁜 가족 등 사회 문화적 현실로 제도의 원활한 이행이 어려운 현실이다"라고 말했다.

실제로 의료기관마다 조금씩은 다르지만 연명의료중단 등 결정의 절차를 밟은 환자의 많게는 2/3는 여전히 사전연명의료의향서나 연명의료계획서 작성을 통해 자기결정권을 행사하지 못하고 가족의 의사추정이나 전원합의의 형태를 따르고 있다는 것이 의료계의 목소리다.

박형욱 단국대 의과대학 의예과 교수 역시 "연명의료결정법은 환자의 자기결정권을 매개로 가족이 연명의료중단을 결정하는 것은 허용하지 않으면서 환자의 자기결정권과 무관하게 가족이 연명의료중단을 결정하는 것은 허용한다"며, "이는 환자의 자기결정권을 존중하는 것이 아니며 국가가 독단적으로 환자의 의사와 무관하게 가족의 개입을 허용하는 것"이라고 밝혔다.

특히 박 교수는 연명의료결정법이 대리인 지정을 허용하지 않음으로서 제도의 경직화를 불러 오고 있다는 점을 지적했다. 그는 "환자도 가족도 의료진도 경직된 제도에서 어려움을 겪고 있다. 커진 것은 국가의 기능이자 관료화된 제도이며, 무시된 것은 환자의 자기결정권이라 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따라서 경직된 제도로 의료인의 선의를 믿지 않고 모든 것을 관료화하여 검증하려는 태도보다는 의료진의 부담을 덜어주어야 한다는 관점으로 접근하여, 의료인으로 하여금 조금 더 본질적인 부분에 집중할 수 있도록 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김대균 가톨릭대 인천성모병원 교수는 "'사전연명의료의향서’와 ‘연명의료계획서’의 본래 취지는 의료진과 환자 및 보호자가 함께 존엄한 죽음을 숙고하고 그것을 이뤄가도록 하는 것이었지만, 실제 의료현장에서는 기존의 '심폐소생술 거부서'(DNR)를 대신하는 소극적인 역할에 머물고 있다"고 지적했다.

실제 우리나라가 연명의료결정법 시행과정을 살펴보면, 의료인에 대한 충분한 사전교육과 훈련, 사회 문화적 합의 과정이 부족했던 것이 사실이다.

법률 시행의 유예기간 동안 내실 있는 준비에 필요한 예산도 배정되지 못했고, 사전 교육 및 홍보 등이 부족해 시행 직후 의료현장에서는 혼돈이 야기됐다. 이에 더해 전산등록시스템의 불안정함 등의 행정적 시행착오까지 겪다보니 의료인들은 '골치 아픈 일', '현실적으로 제대로 할 수 없는 일', '임종 환자가 많은 과가 아닌 이상 나와 무관한 일' 등의 반응을 보였다는 설명이다.

이 가운데 정부는 이를 개선하고자 2020년 의료 질 평가의 항목으로 '연명의료 자기 결정 존중 비율'이라는 지표를 신설했다. 이는 총 연명의료결정 이행 건수 중 연명의료계획서와 사전연명의료의향서에 의한 이행 건수의 비율을 의미한다.

김 교수는 "연명의료결정 이행 건수를 늘리기 위해 연명의료계획서와 사전연명의료의향서 대신 DNR을 늘리는 꼼수는 물론, 목적이 간과되고 과정이 생략된 채 '연명의료계획서' 작성 그 자체에만 주목하는 사례가 발생할 수 있다"며, 해당 정책이 오히려 "이 법의 제정 취지라 할 수 있는 '자기결정권의 존중'이나 '환자 이익 최우선'의 가치를 외면하는 것"이라고 꼬집었다.

따라서 정말로 연명의료결정법을 활성화하여 그는 목적에 부합하는 과정이 잘 이뤄지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최일선의 의료인에 대한 충분한 교육 기회 제공, 행정적인 부담을 줄이기 위한 인력 지원 등이 선행되어야 한다는 주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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