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무장병원' 명의 의사에 요양급여 전액 환수‥大法 "부당"

요양급여 징수는 건보공단 '재량행위'지만‥기준 없이 무조건 의사에게 전액 징수는 '재량권 남용'
조운기자 goodnews@medipana.com 2020-06-10 06:05
[메디파나뉴스 = 조운 기자] 비(非)의료인이 운영하는 '사무장병원'에 명의를 빌려주고 고용된 의사에게 요양급여비용 전액을 징수한 건강보험공단의 처분이 부당하다는 대법원의 판결이 나왔다.

그간 아무리 '사무장병원'이라고 해도 월급을 받고 실질적인 의료행위를 한 의사들에게 요양급여 전액을 징수하는 처분은 과도하다는 지적이 있었지만, 대법원이 실제로 건강보험공단의 요양급여 전액 징수를 '재량권 남용'이라고 판단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특히 요양급여 징수 범위를 정할 때, 해당 의사가 취한 이익의 정도, 조사 과정에서 협조 정도 등을 반영하라고 밝히면서, 향후 사무장병원 적발을 위한 자진신고제 등의 도입 등도 전망된다는 해석이다.
 

최근 대법원은 의사 A씨가 국민건강보험공단(이하 건보공단)을 상대로 제기한 요양급여비용징수처분 취소 청구 소송에서 원심을 파기 환송했다.

A씨는 지난 2005년 5월 2일부터 2007년 2월 22일까지 B병원의 개설명의자이자 병원장으로 B병원에서 근무하다, 지난 2013년 9월 23일 건보공단으로부터 의료법 제30조 제2항을 위반한 '사무장병원'에 고용돼 의료행위를 했다는 이유로 그간 B병원에 지급된 요양급여비용 약 51억원을 징수하는 처분을 받았다.

의료법 제30조 제2항은 의료인이 아니면 의료기관을 개설할 수 없다는 내용으로, 의료기관 개설자격을 의료전문성을 가진 의료인이나 공적인 성격을 가진 자로 엄격히 제한함으로써 건전한 의료질서를 확립하고 영리 목적으로 의료기관을 개설하는 경우에 발생할지도 모르는 국민 건강상의 위험을 미리 방지하기 위한 것이다.

이에 따라 비(非)의료인이 필요한 자금을 투자하여 시설을 갖추고, 의료인을 고용하여 그 명의로 의료기관 개설신고를 한 행위는 '사무장병원'으로써 불법적인 의료기관 개설의 형태가 돼 국민건강보험법 제52조 제1항에 '공단은 사위 기타 부당한 방법으로 보험급여를 받은 자 또는 보험급여비용을 받은 요양기관에 대하여 그 급여 또는 급여비용에 상당하는 금액의 전부 또는 일부를 징수한다'는 내용에 따라 요양급여비용 환수 처분의 대상이 된다.

A씨는 애초 B병원이 '네트워크병원'이지 비의료인인 C씨가 A씨의 명의를 빌려 개설한 '사무장병원'이 아니며, 본인은 '사무장병원'이라는 사실조차 인지하지 못했다고 밝혔다.

또 B병원이 '사무장병원'이라 할지라도, 의료인이 정상적인 진료행위를 하고 그 대가를 수령한 것이기 때문에 국민건강보험법 제52조 제1항의 '기타 부당한 방법으로 보험급여비용 등을 수령한 경우'가 아니라고 반박했다.

특히 A씨는 B병원에서 근무하면서 처분 액수의 5%에 불과한 2억 5,000만 원 상당의 급여를 받았을 뿐, 이 사건 요양급여비용인 51억여 원 상당의 이익을 취한 바 없음을 강조하며 해당 처분이 재량권 일탈‧남용에 해당한다고 주장했다.

먼저 B병원의 '사무장 병원'의 여부는 비의료인이 시설 및 인력의 충원·관리, 개설신고, 의료업의 시행, 필요한 자금의 조달, 그 운영성과의 귀속 등을 주도적인 입장에서 처리했는지 여부에 따라 결정된다.

이에 따라 원심 재판부는 B병원이 최초 개설 될 당시부터 비의료인인 C씨가 투자자들을 모아 병원 건물의 보증금, 시설비용 등 모든 비용을 부담했고, A씨는 C씨가 알려주는 대로 병원 운영에 필요한 서류 등을 C씨에게 건네주어 B병원의 개설명의자를 A씨로 변경한 것을 확인해, A씨가 B병원을 사무장병원으로 인지하지 못했다는 주장은 받아들일 수 없다고 판단했다.

특히 C씨는 A씨 명의 통장을 만들어 건보공단으로부터 받은 요양급여비용을 비롯한 병원의 수입을 관리했고, 해당 병원의 운영성과는 C씨 등 투자자들에게 모두 귀속돼, A씨는 C씨로부터 매월 1,200만원의 월급을 받았던 것으로 나타났다.

그 외에도 C씨는 병원입출금 등 재정관리, 병원시설, 의료기기 구입, 의약품 계약 등 행정적인 업무뿐만 아니라 봉직의사 고용, 직원채용 등의 모든 업무를 수행했고, C씨의 가족친척들이 B병원에서 다수 근무한 것도 드러나면서, 재판부는 B병원이 '사무장병원'이라는 사실을 확인했다.

따라서 재판부는 B병원의 실질 개설자가 비의료인인 C씨가 아니라 의사 A씨라는 주장은 이유가 없다며, 해당 병원이 '사무장병원'이라고 결론내렸다.

원심 재판부는 해당 의료법 제30조 제2항이 건전한 의료질서를 확립하고, 영리 목적으로 의료기관을 개설하는 경우 발생하지도 모르는 국민 건강상의 위험을 미리 방지하고자 하는 데 있으며, 비의료인이 의료기관을 개설해 운영하는 행위는 형사처벌의 대상이 되는 범죄행위이자 사회통념상으로 도저히 용인될 수 없는 정도로 반사회성을 띠고 있기에 사무장병원의 개설명의자인 A씨는 의료인이라 할지라도 건강보험법 제52조 제1항에 의한 부당이득징수처분 대상이 된다고 보아야 한다고 봤다.

또한 재량권 일탈‧남용이라는 주장에 대해서도 "부당이득징수처분은 민사상 부당이득반환과 성질을 달리 하는 것으로서 관련 법령에 의하여 요양급여비용으로 지급될 수 없는 비용임에도 불구하고 그것이 지급된 경우에 이를 원상회복시키는 처분이라고 봄이 타당하다. 이와 같은 부당이득징수처분의 취지에 비추어 보면,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부당하게 지급된 요양급여비용 전액을 징수하는 것이 원칙"이라며 A씨의 주장을 모두 받아들이지 않았다.

결국 원심은 애초 건보공단의 요양급여비용 전액 징수처분이 합당하다며 A씨의 청구를 기각했다.
 

이어진 상고심에서 대법원은 앞서 원심과 마찬가지로 B병원이 비의료인인 C씨가 개설한 '사무장병원'임을 확인하며, B병원에 지급된 요양급여비용은 부당이득징수처분의 대상이 된다고 판단했다.

하지만 건보공단이 A씨에게 내린 요양급여비용 '전액 징수처분'에 대한 재량권 일탈‧남용 여부에 대한 판단은 원심과 달랐다.

대법원은 "행정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수단은 그 목적달성에 유효․적절하고, 또한 가능한 한 최소침해를 가져오는 것이어야 하며, 아울러 그 수단의 도입으로 인한 침해가 의도하는 공익을 능가하여서는 안 된다"면서, 재량권의 일탈‧남용을 심사할 때 사실오인과 비례‧평등의 원칙 위반 여부 등이 그 판단기준이 된다고 밝혔다.

A씨의 경우 해당 사무장병원에서 실제 개설자인 C씨에게 자신의 명의를 제공할 뿐 의료기관의 개설과 운영에 관여하지 않았고, 그에게 고용돼 근로 제공의 대가를 받을 뿐 의료기관 운영에 따른 손익을 취한 바 없었다.

실제로 의료법 제30조 제2항에서는 위반행위의 주체인 비의료인 개설자는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2천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도록 규정한 반면, 의료인인 개설명의인은 제69조에서 ‘의료기관의 개설자가 될 수 없는 자에게 고용되어 의료행위를 한 자’로서 300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도록 해 다소 형이 가볍다.

대법원은 건보공단의 부당이득징수가 재량행위임을 인정하면서, 부당이득징수의 범위를 정할 때, 해당 요양기관이 실시한 요양급여 내용과 요양급여 비용의 액수, 의료기관 개설․운영 과정에서의 개설명의인의 역할과 불법성의 정도, 의료기관 운영성과의 귀속 여부와 개설명의인이 얻은 이익의 정도, 그 밖에 조사에 대한 협조 여부 등의 사정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그럼에도 건보공단이 의료기관의 개설명의인인 A씨를 상대로 다른 고려 사항 없이 요양급여비용 전액을 징수하는 것은 다른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비례의 원칙에 위배된 것으로 재량권을 일탈․남용한 때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다고 판단했다.

결국 대법원 재판부는 원심 판단에는 비례의 원칙, 재량권 일탈․남용 등에 관한 법리를 오해하여 판결에 영향을 미친 잘못이 있다며 원심판결을 파기 환송하라고 결론 내렸다.

해당 판결에 대해 김준래 변호사(전 건보공단 선임전문연구위원)은 "이번 판결은 사무장병원은 건강보험법상, 의료법에 따라 개설된 의료기관으로 볼 수 없으나, 부당이득 징수처분의 상대대상인 요양기관에는 해당한다는 점을 확인했다. 적법한 요양기관은 아니지만 처분 대상이 된다는 것"이라고 해석했다.

특히 김준래 변호사는 대법원이 건보공단의 부당이득 환수처분을 재량행위로 인정하고, 재량껏 환수 범위를 정할 때 개설명의인이 의료기관 운영성과를 통해 얻은 이익 및 협조 여부 등을 고려하라고 디테일한 기준을 제시해 정리한 것은 큰 의미가 있다고 밝혔다.

김 변호사는 "이번 판결은 그간 사무장병원에 귀속됐던 의료인들 입장에서도 반길만한 것이다. 그간 사무장병원은 요양급여비용의 70%만 반납하면 되는데, 의사들은 본인부담금까지 포함해 100%를 반납해야 해 의사 입장에서 억울하다는 목소리가 많았기 때문이다"라고 말했다.

나아가 대법원이 환수 범위의 기준을 제시한 만큼 국회에서도 입법 보완이 필요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그는 "사무장병원에 대한 자진신고제, 리니언시(Leniency) 제도 등을 통해 의사의 처벌을 경감하거나 면제할 수 있는 방안 등을 도입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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