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지부 이유 없이 현지조사 '중복'‥法 "행정조사기본법 위반"

1차 현지조사 후 시정 기회도 안 줘‥새로운 증거 확보한 경우에만 동일한 사안 재조사 가능
조운기자 goodnews@medipana.com 2020-08-21 06:05
[메디파나뉴스 = 조운 기자] 새로운 증거를 확보한 경우도 아닌데 현지조사를 중복으로 실시한 복지부 및 행정기관에 대해 사법부가 '행정조사기본법' 위반으로 해당 현지조사를 근거로 시행한 행정 처분을 모두 취소하라는 판결을 내려 관심을 모으고 있다.
 

최근 서울행정법원은 A의료조합이 보건복지부장관, 국민건강보험공단, 지자체장 등을 상대로 제기한 소송에 요양기관 업무정지 처분 취소 등 청구에서 의사 A씨의 손을 들어주었다.

A의료조합은 B병원을 개설·운영하고 있는 소비자생활협동조합법상 의료조합으로 지난 2015년 8월 31일 보건복지부로부터 1차 현지조사를 받은 후 다시 2016년 9월 26일 2차 현지조사를 받았다.

2015년 8월 31일부터 9월 3일까지 진행된 1차 조사에서 복지부는 2014년 7월부터 2015년 6월까지 A의료조합의 '의료서비스의 질, 의료기관 운영의 적정성, 국민건강보험법 및 의료급여법상 요양급여비용 청구의 적정성 등 제반 법규 준수 사항'을 조사범위에 놓고 복지부 의료기관정책과와 국민건강보험공단이 실제 조사자가 돼 현지조사를 실시했다.

당시 1차 조사 결과에 대해 어떠한 통보도 없었던 복지부는 이듬해인 2016년 9월 26일부터 9월 30일까지 A의료조합을 상대로 재차 2014년 10월부터 2016년 7월까지의 '건강보험 및 의료급여에 관한 제반 사항'에 대해 복지부 보험평가과와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이 실제 조사자가 돼 2차 현지조사를 벌였다.

이후 복지부장관은 A의료조합이 간호인력 확보 수준에 따른 입원료 차등제 위반 및 환자 수 대비 간호사 수 비율에 따른 감산 위반 사실을 적발했다며, A의료조합에 114일의 요양기관 업무정지 처분과 110일의 의료급여기관 업무정지 처분을 내렸다.

뒤이어 국민건강보험공단은 복지부와 같은 이유로 15억여 원의 요양급여비용 환수처분을, 지자체장 역시 3억여 원의 의료급여비 환수처분을 했다.

이에 대해 원고 A의료조합은 복지부가 실시한 2차 현지조사가 행정조사기본법상 위법하다는 '절차상 하자'와 처분 사유인 간호인력 확보 수준 위반 사항에 문제가 있다는 '실체상 하자'가 있다고 주장했다.

특히 처분 근거가 된 '간호인력 확보 수준 위반 사항'에서 문제가 된 B 간호사는 병원의 수간호사로, 그 직책 상 입원환자의 간호업무에 방해되지 않는 선에서 퇴근 후 병원인증 업무 등을 수행한 것이라고 해명했다.

이 같은 원고 측 주장에 대해 서울행정법원 재판부는 복지부의 1차 현지조사와 2차 현지조사가 행정조사기본법 제15조에서 금지하고 있는 '중복조사'에 해당해 그 외 실체적 하자 등에 대해 살필 필요도 없이 복지부 등 행정기구의 처분이 위법하다는 판결을 내렸다.

행정조사기본법 제15조 제1항에 의하면, 당해 행정기관이 이미 조사를 받은 조사대상자에 대해 위법행위가 의심되는 새로운 증거를 확보한 경우가 아니라면, 동일한 사안에 대해 동일한 조사댕사자를 재조사해서는 안된다.

재판부는 "이는 반복적인 행정조사에 의한 조사대상자의 권익 침해와 조사관청의 자의적인 권한남용을 방지하고자 하는 것이므로, 위 규정에서 금지하는 중복조사에 기초한 제재적 행정처분은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절차상 하자가 있어 위법하다"고 강조했다.

구체적으로 재판부는 이 사건 1차 현지조사와 2차 현지조사는 비록 조사의 범위는 다르지만, 실시 주체가 보건복지부 장관으로 동일하고, 둘 다 건강보험과 의료급여에 관한 비용 청구의 적정성 여부에 관한 사항이 포함돼 있으며, 2차 조사대상 기간 중 2014년 10월부터 2015년 6월까지가 1차 조사대상 기간과 중복된다고 지적했다.

따라서 재판부는 이 사건 각 처분은 위법한 중복조사에 근거한 것으로서 절차상 하자가 있다고 판단해 복지부의 업무정지 처분과 건보공단과 지자체의 환수 처분 모두 취소하라고 명령했다.

해당 사건의 원고 측 변호를 맡은 법무법인 세승 현두륜 변호사에 따르면 복지부는 1차 현지조사 이후 새로운 증거를 확보하지 못한 상황에서 동일한 사안에 대해서 2차 현지조사가 실시했으며, 1차 현지조사 이후 보건복지부장관은 그 결과를 원고병원에 통지하지도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2차 현지조사에서는 조사대상기간만 늘어났을 뿐, 1차 현지조사에서 확보한 증거를 다시 확인하는 정도에 불과했고, 원고 병원은 1차 현지조사 이후 부당청구 여부를 확인하고 이를 시정할 수 있는 기회를 놓치고 말았을 뿐만 아니라, 조사대상기간 연장으로 인하여 부당청구액이 늘어나면서 엄청난 피해를 입게 될 상황에 놓였던 것이다.

현두륜 변호사는 "이번 사건은 법원이 건강보험이나 의료급여와 관련한 보건복지부 장관의 현지조사에 대하여 행정조사기본법을 적용하여 그 절차적 하자를 인정한 사례이다. 그동안 현지조사 과정에서 국민건강보험법(또는 의료급여법)이나 현지조사지침 위반을 이유로, 절차적 하자를 인정한 사례는 간혹 있었다. 하지만, 행정조사기본법 위반을 이유로 한 절차적 하자를 인정한 사례는 드물었다. 이번 사건은 행정조사기본법, 그 중에서 '중복조사 금지원칙' 위반을 이유로 절차적 하자를 인정하였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고 설명했다.

나아가 "행정조사기본법의 목적은, 행정조사에 관한 기본원칙·행정조사의 방법 및 절차 등에 관한 공통적인 사항을 규정함으로써 행정의 공정성·투명성 및 효율성을 높이고, 국민의 권익을 보호함에 있다. 앞으로 건강보험이나 의료급여에 관한 현지조사에서도 이러한 행정조사기본법을 엄격하게 적용하여, 행정의 공정성과 투명성을 높이고 의료기관의 권익을 보장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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