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첩] '단순집계'라더니…일방적 결정엔 책임이 필요한 법

이정수 기자 (leejs@medipana.com)2024-02-01 13:13

[메디파나뉴스 = 이정수 기자] "이번 결과는 단순집계라고 보시면 된다."

보건복지부는 지난해 11월 말 의대정원 수요조사 결과를 발표할 당시 이렇게 설명했다. 또 정부가 일방적으로 의대정원 확대 규모를 결정하는 것이 아니고, 의료계와 계속 협의해 나가겠다고도 했다.

2개월이 지난 현재, 그 단순집계는 거의 현실화 됐다.

수요조사 결과 발표 이후에도 의료계는 의대정원 증원 필요성부터 재검토해야 한다는 입장을 피력해왔지만, 정부는 한시 바삐 의대정원 확대 규모를 결정하기 위해 논의하자는 데 중점을 뒀다.

서로 다른 출발선과 엇갈린 시선 속에서, 수차례 진행된 협상 테이블은 끝내 무위에 그쳤다.

의료계는 의대정원 증원 정책에 가장 밀접하게 관여돼있는 당사자라 할 수 있지만, 그들이 내건 원칙은 이번 정책을 추진해온 정부 행보를 막지 못했다.

오늘(1일) 정부는 '생명과 지역을 살리는 의료개혁'이라는 명목 하에 의료인력 확충, 의료사고 안전망 구축, 보상체계 공정성 제고 등이 담긴 정책 패키지를 확정해 발표했다.

이 정책 패키지에는 2025학년도부터 입학정원을 확대할 예정이며, 증원 규모는 의과대학 현장 수용역량, 지역의료 인프라, 인력 재배치 방안 등을 고려해서 결정하겠다는 내용이 담겼다. 2025년 중에는 의대정원 조정시스템을 구축하겠다는 정책방향도 포함됐다.

정책 패키지 확정을 매듭지은 만큼, 정부는 곧바로 의대정원 확대 규모까지 발표할 가능성이 높다. 일각에서는 설 연휴 전에 1000명 이상을 확대하는 방안이 발표될 것이라는 추측이 나오고 있다.

결국 지난해 11월부터 의료계 최대 쟁점으로 떠오른 의대정원 증원 문제는 의료계 입장과 의견이 무시된 채 오롯이 정부 주도 하에 결정되고 추진된 격이 됐다.

20여년전인 2000년에도 비슷한 일은 있었다. 당시 정부는 의료계와 약계 반대를 무릅쓰고 의약분업을 시작했다. 사후 평가는 보는 시각에 따라 엇갈리고 있지만, 현재는 의약분업이 필요하다는 평가도 공존한다.

하지만 의대정원 증원은 무게감이 다르다. 의료계 붕괴를 가져올 것이라고, 그간 쌓아온 전통과 자부심도 무너질 것이라고, 의료계는 그렇게 경고하고 있다.

게다가 평가는 당장이 아닌 10년 뒤부터 가능하다. 이번 의대정원 증원 결정으로 늘어난 의대생이 전문의가 되는 시기다. 그때 가서 의대정원 확대가 올바른 것으로 평가된다면 다행이겠지만, 그른 것으로 판가름되더라도 뒤늦은 수습은 아무런 소용이 없을 테다.

이같은 상황임에도 정부는 채 반년이 지나기도 전에 의대정원 증원을 확정지었다. 진정 의료계 우려대로 10년 후 의료 체계 붕괴가 서서히 시작된다면, 그때 가서 누가 책임지게 될지 의문이다.

이미 물은 엎질러졌고 버스는 떠났다. 정부는 의대정원 증원 책임이 오롯이 정부에게 있음을 잊어선 안 된다. 분명한 책임 의식으로 정책 패키지를 추진함으로써 잃어버린 의료계 민심을 회복해야만, 성장과 발전으로 나아갈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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