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살'을 '살자'로 바꾸는 치료‥'스프라바토'가 보여준 희망

[연중기획 희망뉴스] 비강분무형으로 경구제 대비 빠른 효과‥'급성 자살' 생각 또는 행동 등 우울 증상 개선

박으뜸 기자 (acepark@medipana.com)2021-12-16 06:04

[메디파나뉴스 = 박으뜸 기자] 고등학교 시절부터 시작된 여러 불안과 우울 증세는 A씨(24세·여성)를 계속 무력하게 만들었다. A씨의 중증 우울증(우울장애)은 여러 약물 치료에도 큰 호전이 없었고, 결국 충동적인 자살 생각으로 이어졌다. 

이런 A씨가 얀센의 '스프라바토 나잘스프레이(Spravato Nasal Spray, 에스케타민 염산염)'를 처방받고 극적인 변화를 맞이했다. 

"스프라바토로 치료를 받고, 다음 날 아침에 무언가 이상하다고 느꼈어요. 5-6년 만에 느끼는 감각이었거든요. 정말 신기하게도 자살에 대한 생각이 사라지고 무언가 하고 싶거나, 먹고 싶은 게 생겼습니다."

중증도 이상의 우울증 환자에게 '자살 사고'가 있다면, 자살을 방지하기 위해 반드시 그에 맞는 신속한 치료가 필요하다. 

하지만 경구용 항우울제 등의 약물 치료는 최소 2~3주부터 효과가 나타나기 때문에, 자살 위험성(suicidality)이 높은 환자에게 신속한 대안이 되지 못했다. 

그런데 스프라바토는 투약한 지 약 4시간 이후 치료 효과가 나타난다. 또한 통계적으로는 하루, 즉 약 24시간 만에 우울 증상과 자살 충동성이 유의미하게 감소하는 것으로 보고됐다. 

자살 사고가 있는 환자에게 빠른 효과를 보이는 치료제. 자살로 연결되는 과정을 막을 수 있는 치료제가 실제 임상에서도 도입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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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살 위험'이 높은 우울증 환자에게 필요한 것 : 빠른 효과의 치료제

대한민국은 지난 2003년 이후 17년 간(2017년 제외) OECD 회원국 중 자살률 1위란 타이틀을 차지하고 있다.  

2020년 자살예방백서에 의하면, 한국인 자살 경로의 고위험 요인은 연령·성별을 막론하고 우울장애(우울증)가 꼽혔다. 

그리고 국내 우울증 환자는 매년 증가 추세를 보이고 있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의 '연도별 연령대별 우울증 환자 현황'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국내 우울증 환자 수는 83만 7,808명으로 2016년 64만 3,102명에 비해 30.3%가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A씨도 그 중 하나였다. 대학 신입생 시절부터 생긴 편두통은 취직 후 더욱 심해졌다. 이 때문에 찾아간 신경과 의사는 A씨의 증상이 호전되지 않자, 정신건강의학과 치료를 권유했다. 

우울증은 일반적으로 우울한 감정에 대해서만 인식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실제로는 불안감과 힘든 감정 조절, 늘어난 충동성도 우울증 증상에 포함된다.  

"고등학교 시절부터 인생에 대해 계획이 없었고, 내일이 기대되지 않았어요. 그래서 죽음에 대한 생각은 자연스럽게 생겼던 것 같아요. 당연히 모든 사람이 나와 같은 생각을 하는 줄 알았는데, 우울증이라는 것을 알게 되면서부터 혼란스러웠습니다."

중증 우울증은 A씨를 충동적으로 만들었다. 손목을 긋거나 약을 한 번에 많이 먹는 등 자살 시도도 있었다. 

"5-6년간 대략의 계획만 세워 둔 상태였는데, 불안증이 심해지자 '이 상태로 어떻게 살지?'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모든 자살 시도는 갑작스럽고, 항상 충동적으로 이뤄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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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산차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김민경 교수<사진>는 A씨와 같은 환자들은 반드시 신속한 치료가 행해져야 한다고 조언했다. 

"실제 전문의들은 중증도 이상으로 진단된 환자들에게 자살 사고가 있는 지 확인합니다. 자살 사고는 죽음에 대한 생각을 스쳐 지나가듯 하게 되는 것부터, 자살을 위한 계획을 세우거나 행동을 취하는 양상까지 넓은 스펙트럼을 보입니다."

일반적으로 자살 위험성이 높은 경우, 정신과적 응급 상황으로 진단하고 우선적으로 일반 병동이 아니라 보호(폐쇄) 병동에 입원해 치료를 고려한다. 

입원을 하게 되면 증상에 대한 약물 치료(항우울제)와 비약물 치료를 포함한 생물학적 치료를 빠르게 시작한다. 중증의 급성이거나 약물 치료를 할 수 없을 때에는 전기 경련 치료(ECT)를 고려하기도 한다.

하지만 우울증 환자의 입원 치료 효과는 일시적이기 때문에, 퇴원 후 재입원할 가능성이 높다. 

또한 전기 경련 치료(ECT)를 1차 치료부터 사용하는 경우는 많지 않다. 마취가 필요하고, 동시에 인지 기능 장애 등 여러 부작용으로 치료에 부담이 따르기 때문이다.

게다가 우울증 환자에게는 어떤 경우든 약물 치료(항우울제)가 이뤄진다. 다만 신속하게 자살 사고를 완화시켜야 하는 상황에서, 경구 약물은 치료 효과가 매우 느리게 나타난다는 점이 아쉬웠다. 

"경구 항우울제를 복용하면, 최소 2~3주부터 효과가 나타나기 시작해요. 보통 6~8주까지 치료한 뒤 반응을 확인하게 됩니다. 우울증으로 인한 자살이 정신적 응급 상황인 이유는 바로 충동성을 가지고 있다는 점 때문이죠. 이런 충동성을 막기 위해선 경구용 항우울제의 치료 효과 발현 시간이 너무 오래 걸려 한계점이 존재했습니다."

오래도록 약물을 복용했지만, 큰 개선이 없자 A씨의 치료 의지도 점차 사라졌다. 

이러한 A씨에게 때마침 '스프라바토'가 국내 도입됐다는 소식이 들렸다. 김민경 교수는 A씨의 높은 자살 사고를 파악하고, '스프라바토'를 권유했다. 

◆ 자살 위험 높은 환자에게 시의적절하게 사용할 수 있는 '스프라바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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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프라바토의 주 성분인 에스케타민은 본래 마취제로 사용하는 케타민의 광학 이성질체다. 우울증과 관련된 뇌 피질 및 변연계의 특정 수용체에 친화력이 높은 특징을 가지고 있다. 스프라바토는 신경세포 사이의 시냅스 연결성을 향상시킴으로써, 우울증 및 스트레스로 인해 역기능적인 신경세포의 직접적인 회복과 연결을 돕는다. 

에스케타민이라는 성분 자체는 호흡과 폐를 통해 더욱 빠르게 흡수되는 성질을 가지고 있다. 그런데 이 물질이 흡입형으로 만들어지면서 신속한 효과 발현이라는 큰 장점을 갖게 됐다. 

스프라바토는 특수 설계된 일회용 비강 분무용(Nasal Spray) 치료제다. 비강 내 혈류로 흡수돼 경구용 치료제보다 빠르고 높은 수준으로 우울 증상을 개선시킨다.

경구용 약물이라면 흡수와 효과 발현에 시간이 걸리고, 주사제라면 투약 시 환자에게 통증과 불편이 따른다. 반면 흡입형 제제는 비침습적이어서 환자의 불편이 감소한다. 

국내에서 스프라바토는 2020년 6월, '최소 2개 이상의 다른 경구용 항우울제에 적절히 반응하지 않는 성인의 중등도~중증의 주요 우울장애(치료 저항성 우울증) 치료'에 첫 허가를 받았다. 

"스프라바토는 진료 현장에 꼭 필요했던 치료제입니다. 현재 우울증의 약물 치료 요법이 많이 발달해 있으나, 경구용 항우울제 치료를 받는 환자 중 약 3분의 1은 적정 용량의 약물을 충분한 기간 동안 사용해도 반응이 나타나지 않습니다. 이런 환자들은 더욱 절망적이고 부정적인 상태가 되기 쉽죠. 환자들에게 새로운 치료를 제시할 수 있다는 점에서 희망적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이후 2020년 12월, 스프라바토는 '급성 자살 생각 또는 행동이 있는 성인의 중등도~중증의 주요 우울장애 우울 증상의 빠른 개선'으로 두 번째 적응증을 허가받았다.

"스프라바토에 가장 기대가 됐던 점은, 증상 완화 효과가 빨리 나타나는 치료제라는 점이었습니다. 중증의 우울증 환자들에겐 증상을 빠르게 완화시켜 주는 것이 급선무이기 때문이죠."

글로벌 3상 임상시험인 ASPIRE I 및 ASPIRE II에서 스프라바토와 표준 치료 병용 투약군은 위약 비강 스프레이와 표준 치료 병용 투약군보다 통계적으로 유의미하게 우울 증상을 개선시켰다. 주요 우울장애 증상에 대한 스프라바토와 표준 치료 병용 투약군의 임상적 이점은 1차 투약 후 4시간 시점에 분명하게 나타났다.

"스프라바토는 투약 후 약 4시간, 통계적으로는 약 24시간 만에 우울 증상과 자살 충동성을 유의미하게 감소시켰습니다. 말 그대로 정신적 응급 상황(중증도의 우울 증상과 자살 충동성)일 때 사용할 수 있는 치료제입니다."

스프라바토의 권장 치료 기간은 6개월이다. 첫 번째 달은 유도기로, 권장 용량은 경구용 항우울제와 병용요법으로 4주 동안 주 2회 84mg이다. 내약성에 따라 56mg로 감량할 수 있다.

"실제로 스프라바토를 사용해 본 결과, 많은 환자들이 이 유도기만 지나도 호전을 경험합니다. 환자가 안정적인 증상 완화 효과를 경험하고 있다면 조금씩 용량과 빈도를 조절하면서 치료를 지속하죠. 

경구 항우울제가 최소 6개월 이상 투약이 권장되는 점을 고려할 때, 스프라바토도 같은 수준의 장기적 유지 효과를 나타내고 있다고 판단됩니다. 임상시험 결과, 1년간의 장기 효과 유지 및 절반 이상의 환자에서 재발 방지 효과가 보고된 바 있고요."

스프라바토 나잘스프레이는 병원 내에서, 의료 전문가가 옆에 있는 상태에서만 투약이 가능하다. 의료진은 환자들이 경험할 수 있는 부작용이나 만일의 응급 상황을 같이 관찰하고 도와주는 역할을 한다.

"치료 시, 환자는 병원에 내원해 약 두 시간 정도 머무른다고 생각하면 됩니다. 초기 환자의 전반적 컨디션을 확인하고, 환자가 편하게 휴식하는 자세를 취하면 디바이스를 2~3번 5분 간격으로 투약합니다. 이후 약의 효과와 부작용 면에서 큰 이상이 없다면 귀가하게 됩니다."

스프라바토의 임상시험에서는 이상반응으로 해리 현상이나 약간의 혈압 상승, 두통 등이 관찰됐다. 그렇지만 이는 대부분 경증이었고, 2시간 이내에 대부분 해소됐다. 

◆ 죽음보다는 '삶'을 생각‥새로운 일상의 시작

A씨는 신체 증상으로 인해 타 진료과로부터 치료를 받았으나, 호전되지 않아 협진을 통해 정신건강의학과로 내원하게 된 케이스였다. 

우울증 기간만 4-5년이 넘었고, 신체 증상에 대한 기간까지 포함하면 상당히 장기간 병원 치료를 받은 셈이다. 

"A씨는 두 가지 이상의 항우울제를 충분한 기간 동안 사용했음에도 치료 반응이 잘 나타나지 않는 경우였습니다. 입원 치료가 필요한 환자였지만, 직장인이어서 입원이 어려웠고 환자 본인도 거부감이 있었죠. 우울 증상이 심했고 자살에 관한 생각이 있었기 때문에 새 치료법을 제안하게 됐습니다."

스프라바토를 사용하기 직전까지 A씨는 치료 자체에 기대감과 희망이 많이 떨어진 상태였다. A씨는 이 당시 '마지막으로 해보자'라는 마음이었다고 털어놓았다. 

그런데 이와 같이 부정적인 생각은 스프라바토 첫 치료 후 완전히 뒤바뀌었다. A씨는 "자고 일어났더니 우울증을 앓기 전 시절로 돌아간 것 같았다"라고 회상했다. 

"아주 드라마틱한 피드백이었죠. 치료 기간이 아직 남았기에 지금도 치료가 지속되고 있지만, 오랜 기간 무기력과 절망을 경험했던 환자가 한 번이라도 즉각적이고 긍정적인 변화를 경험을 했다는 점이 인상 깊었습니다. 

무엇보다 치료에 비관적이었던 환자가 치료 목표와 과정에 대해 이야기할 만큼 관심과 주도성이 생겼어요.또한 직장 내 평가가 좋아지고 스스로도 에너지가 생겨 취미 생활을 하고 있다고 합니다. 인간 관계에서도 좋은 변화가 있다고 하네요."

내일이 기대되지 않는다고 말하던 A씨는 이제 없다. 그는 미래를 생각할 만큼 변한 자신이 낯설다.  

"자살에 대한 생각이 정말로 많이 줄어들었습니다. 완전히 없어진 것은 아니지만 스스로 신기할 정도로 그런 생각이 안 나요. 미래를 전혀 생각하지 않던 제가 내일, 미래를 조금씩 생각하게 됐다는 것만 해도 큰 변화가 아닐까요? 스프라바토는 일반적인 치료가 듣지 않던 저에게 효과를 보인 유일한 약물입니다."

A씨는 분명 자기와 같은 처지에 놓인 우울증 환자가 많이 있을 것이라 짐작했다. 그런 그들에게 조심스럽게 스프라바토를 추천하고 싶다는 A씨. 

"비싼 가격이 흠이지만, 우울감으로 힘들어하는 분들이 있다면 꼭 추천하고 싶습니다. 특히 일반적인 약물로 상태가 호전되지 않는 분이라면, 죽음을 시도하기 전 살면서 한 번 정도는 스프라바토로 치료받아 보시기를 권유하고 싶어요. 저에게 스프라바토는 '인공호흡기' 역할을 해줬거든요."

김 교수는 우울증이 자살에 중요한 영향을 미치는 만큼, 효능과 안전성이 입증된 약물에 급여 지원이 절실하다고 강조했다. 

"정신건강의학과에서 진료하는 가장 많은 케이스가 우울증 환자 케이스이고, 우울증으로 인한 자살도 많습니다. 그러나 우울증이 치료로 개선될 수 있는 질병보다, 사회적 현상이거나 개인의 가치관 및 상황, 선택의 문제로 이해되고 있는 것이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정책적 지원이 있다면 우리나라의 높은 자살률도 크게 낮출 수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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