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점] '경평 생략 제도→경평 유예 제도'로 바뀔까‥재설계 제안

경평 생략 약제, 비교적 임상 효과가 불확실한 상황‥급여 적정성 판단 및 보완 장치 부재
경제성 입증 없이 진입 허용하되, 등재 후 경제성 평가 수행하는 방향 제안

박으뜸 기자 (acepark@medipana.com)2024-01-05 06:07


[메디파나뉴스 = 박으뜸 기자] 경제성 평가 자료 제출을 생략한 약제들이 계속해서 늘어나고 있다.

이를 놓고 일부에서는 남용이라고 지적하고, 또 다른 쪽에서는 환자의 접근성 확대를 위해서는 기준이 오히려 완화돼야 한다는 입장이 팽팽하게 맞서고 있다.

이러한 갈등을 해소하기 위해 전문가들은 경평 생략 약제의 기준을 새롭게 설정하고, 재정비할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 경평 생략 제도의 도입
 

우리나라는 2007년 1월부터 치료적 가치와 경제적 가치가 우수한 의약품을 선별해 건강보험으로 급여 적용하는 선별등재제도(positive list)를 시행하고 있다.

비교대상 약제(치료법)에 비해 임상적 유용성이 개선됐으나 투약 비용이 고가인 약제는 '경제성 평가 자료'를 제출해야 요양급여 신청을 할 수 있다.

그러나 치료적 가치 및 경제적 가치가 우수한 의약품을 선별해 등재하기 위한 제도의 취지에도 불구하고, 엄격해진 급여 평가로 인해 신약에 대한 환자 접근성이 저하되는 문제가 발생했다.

특히 선별등재제도 시행 이후 대체제가 없거나 환자수가 적어 통계적 근거 생성이 비교적 어려운 치료제의 경우, 경제성 입증에 불확실성이 있어 보험 등재가 어려웠다. 이는 위험분담제가 도입된 후에도 마찬가지였다.

이에 통계적 근거 생성이 곤란한 희귀질환치료제 등을 대상으로 2015년 5월 '경제성평가 자료 제출 생략 가능 제도(이하 경평 생략 제도)'가 도입됐다.

현재 경평 생략 가능 약제는 점차 그 범위를 넓혀가고 있다.

지난해부터 경평 생략 약제 대상은 희귀질환 치료제나 항암제에서 소아 삶의 질 개선을 입증한 약제로도 확대가 된 상태다. 그리고 제외국약가 산출 대상국도 기존 7개국에서 캐나다를 추가해 8개국으로 변경됐다.

경평 생략 약제의 요양급여 평가에 소요되는 법정 처리 기간 역시 150일에서 120일로 단축됐다.

◆ 계속 증가하는 경평 생략 약제
 

2015년 제도 도입 후 경평생략 제도를 적용받아 등재되는 성분의 수는 지속적으로 증가하고 있다.

제도가 도입된 이후 2023년 9월 1일을 기준으로 총 33성분이 경평 생략 적용을 받았다. 질환별로는 항암제 23성분, 희귀질환치료제 6성분에 적용됐다. 기타 요건을 충족하여 경평 생략 제도 적용된 성분도 4성분이다.

2017년, 2018년은 경평 생략 제도 적용으로 등재된 성분이 가장 많았던 해로 각각 6개 성분이 위험 분담 계약을 통해 급여가 개시됐다. 2022년의 경우, 모든 위험분담 약제가 경평생략 제도 적용으로 등재됐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의 '의약품 경제성평가 자료 제출 생략 제도 개선방안 마련 연구'에 따르면, 경평 생략 약제 제도는 환자의 의약품 접근성 향상에 기여한 것이 분명했다.

2014년 이전 허가 받은 의약품에 비해 2015년 이후 허가된 의약품의 경우 약제급여평가위언회 심의 횟수가 감소했고, 허가 후 급여 결정까지의 소요 시간도 단축됐다.

또한 경평 생략 약제는 타 위험분담 적용 약제에 비해 급여되는 속도가 빠른 것으로 나타났다. 경평 생략 약제는 일반적인 위험분담 약제 대비 4개월 가량 이른 시점에 급여가 개시됐는데, 주된 사유는 약평위 평가에 소요되는 시간 단축이었다.

◆ 경평 생략 제도의 한계

그렇지만 경평 생략 제도에도 한계가 드러났다.

경평 생략 약제의 경우 일반적인 약제에 비해 임상적 유용성에 대한 체계적인 평가가 부족한 편이다. 실제로 단순 문헌 인용에 그치거나 전문가 의견에 기초해 평가되는 경우가 많으며, 전혀 자료원을 보고하지 않는 경우도 있었다.

아울러 경평 생략 약제는 근거 생성 어려움을 사유로 경제성 평가 대신 제외국의 급여 및 가격 조건을 토대로 해 요양급여 대상으로 수용 가능한지 평가된다.

이 때 경평 생략으로 결정 신청한 약제가 제외국에서 대부분 위험분담 대상이라 정확한 실제가를 알기 어렵고, 국내와는 지불의사와 사회적 선호 및 제도가 상이한 외국의 약가와 비교를 해야 하는 문제가 있다.

반면 국내에서 경평 생략으로 평가된 약제에 대한 급여 평가 시, HTA(Healthtechnology assessment) 토대의 제외국(영국, 호주, 캐나다 등)은 임상적·경제적 근거를 충분히 활용 중인 것으로 조사됐다. 이들 국가는 직접비교(RCT) 혹은 간접비교 토대로 임상 효과를 평가하며, 비용효과성은 100% 비교약제와의 투약비용 비교 또는 경제성평가 결과를 토대로 평가했다.

경평 생략 약제의 급여 적정성 판단이 경평 생략 요건 충족 여부만을 기준으로 이뤄지고 있다는 점도 문제로 언급됐다.

이밖에 경평생략 약제는 위험분담제, 경제성 평가 등 다른 경로를 통해 등재되는 성분에 비해 환자당 소요 비용이 현저히 높은 특징을 지닌다. 경평 생략 제도 도입 이후 경제성 평가 대상 성분의 약제비도 두드러지게 상승했다.

제도 도입의 영향으로 경평 생략 토대의 비용효과성 평가 비율이 상승하면서, 경제성 평가 토대의 비율은 크게 감소했다. 이러한 현상은 주로 항암제 및 재정소요액이 일정 수준 이상인 성분에서 나타났다.

경평 생략 약제 약가와 비교를 통해 후발약제까지 진입함으로 인해 정식의 경제성이 입증되지 않는 영역이 개별 약제 넘어 질환 단위로까지 확장되는 현상도 보이고 있다.

이에 따라 경제성 평가 통한 근거 생성이 어려운 사유를 규명하는 과정, 경제성 평가를 위해 추후 확보를 요하는 자료를 명시하는 과정 마련 등 제도적 보완이 요구되고 있다.

현재 우리나라는 경평 생략 제도 적용돼 등재된 약제에 대해 최초 설정한 기간(예: 4년)만 위험분담을 적용하거나, 재평가를 수행해 위험분담계약 연장 여부를 결정해 오고 있다. 하지만 이 경우에도 급여 적정성 평가 시 제출이 생략됐던 경제성평가 자료 제출을 다시 요구하지는 않았다.

연구팀은 "경평 생략 약제는 비교적 임상 효과가 불확실한 상황에서 급여 적정성 판단이 이뤄짐에도 이를 보완할 수 있는 장치가 부재하다. 경제성 평가 등을 통한 비용-효과성 평가를 생략했으므로 이를 둘러싼 불확실성이 큰 편이다. 위험분담제 시행 등으로 제외국 약가 수준의 투명성이 낮은데, 경평 생략 약제의 요양급여 대상 선별기준 중 하나인 제외국 등재 가격의 신뢰도도 낮은 편"이라고 설명했다.

이 탓에 제약업계를 제외한 학계, 시민단체 등은 경평 생략 제도의 범위를 축소하고, 기준을 강화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더불어 사후 평가, 재평가가 경제성 평가에 수반돼야 하며, 이를 위한 평가 자료 제출이 필수적이어야 함을 강조했다.

환자단체는 경제성 평가를 모두 적용할 경우 환자의 접근성이 늦어지는 점을 우려해 사후평가가 강화돼야 한다는 입장이다.

반대로 제약업계 측에서는 오히려 경평 생략 제도의 완화, 개선이 필요하다고 바라봤다. 현재 기술적으로 경제성 평가가 불가능한 것은 아니나, ICER가 탄력적으로 적용되지 않아 어려움이 있다고. 외국보다 국내에서 경평 평가가 다소 엄격하게 적용해 경평 트랙으로 급여되기가 어려움을 토로하기도 했다.

◆ 경평 생략 제도→경제성 입증 시기 유예 제도

연구팀은 경평 생략 제도가 아닌 '필요시 경제성 입증의 시기 유예 제도'로 재설계(가칭 '경평 유예 제도')를 제안했다.

현행 경평 생략 가능 영역 중 일부를 등재 시 경제성 입증이 필요한 영역으로 전환하는 것도 방법이다. 미충족 의료 해소 등 특별한 고려가 필요한 경우에 한해 사후 경제성 입증 허용 영역으로 설정하는 방식이다.

이외에 ▲제외국약가 등 토대로 부여되는 평가 금액의 합리적 기준선 제시 ▲사전 명확화 필요 항목에 대한 구체적 계약 등 통한 사후 경제성 입증 프로세스 관리 체계 구축 ▲질환 단위 총액 설정을 통한 총액관리 실효성 도모 ▲비용효과성 평가 토대의 사후 관리 ▲재평가 체계 구축 ▲상황별 적용이 적절한 위험분담제(RSA) 유형 제시가 단기적인 제도 개선 방향으로 정리됐다.

장기적으로 경평 생략 제도는 선별등재제도 기본 원칙 준수 속에서 환자 접근성 보장 위한 제도로 재설계하는 방안이 고안됐다.

미충족 의료 해소의 필요성 및 근거 생산의 불확실성이 매우 큰 경우 등 특별한 사유가 있다면 경제성 입증 없이 진입을 허용하되, 등재 후 경제성 평가를 수행하는 것이 주된 방향이다.

단, 정식의 경제성 미입증 영역 및 기간 최소화를 통해 경제성 미입증 성분의 영향이 개별 약제 넘어 질환 단위로 확장되지 않도록 관리해야 한다는 의견이다.

연구팀은 "정식의 경제성 입증 없이 진입하는 약제의 범위를 최소화해야 한다. 해당 약제에 대해서도 사후 경제성 입증 통해 비용 효과적인 가격 수준을 도출하는 평가를 되도록 이른 시점에 수행하도록 해야 한다. 경제성 입증 없이 진입한 약제의 약가 수준을 토대로 후발 약제 등 진입을 허용한다면, 이로 인해 발생할 수 있는 전반적 약가 수준의 교란 가능성을 최소화하도록 관리 체계를 구축해야 한다"고 말했다.

마지막으로 연구팀은 임상 근거의 불확실성이 일정 수준 존재하는 상황에서 상대효과 추정 등을 위해 예전보다 간접비교 방법 활용의 필요성이 커질 것으로 예상했다. 향후 '간접비교 지침(2014년 개정)'의 손질이 고려된다.

만약 경평 생략 제도 개정안이 적용이 된다면 사후 경제성 입증 통한 관리 체계의 원활한 구축을 위해 현재보다 경제성 평가 인프라(인력·조직 등)의 확대도 필요해 보인다.

연구팀은 "환자의 접근성 향상 및 재정의 지속가능성 확보 목적 모두를 달성하기 위해서는 평가 속도의 개선을 위한 노력 뿐 아니라 등재 가격의 합리적 검증을 위한 평가 역량의 강화가 선행돼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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