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첩] 2000명에 사활 건 사이, 필수의료가 쓰러졌다

조후현 기자 (joecho@medipana.com)2024-02-19 05:59

정부가 의대정원 2000명 증원에 사활을 거는 모습이다. 2000명 규모 의대정원 증원과 필수의료 패키지 정책에 반발한 전공의가 개별 사직에 나서자 면허취소를 거론하는가 하면 업무개시명령과 '필수의료 유지명령'을 내리며 지난 2020년과 같은 사후구제나 선처는 없을 것이란 엄포를 내리고 있다.

필수의료는 명확한 정의를 정부는 물론 당사자인 의료계도 명확히 내리지 못해 지원법조차 공전 중인 사안이다. 정부가 스스로는 물론 당사자조차 명확히 정의하지 못하는 필수의료를 유지하라는 명령을 내린 셈. 의료계 일각에선 저출산 문제도 '피임금지명령'을 내리고 불응하면 법정최고형에 처하겠다고 해 해결하라는 비아냥도 나온다.

정부가 이렇게 엄포로 일관하는 이유는 전공의 개별 행동이 실제 집단행동으로 번졌을 때 대응책이 묘연하기 때문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의료현장 마비를 우려해 업무개시명령을 내리면서 실제 전체 전공의 1만3000여 명이 개별적으로 사직할 경우 정부 말대로 사후구제나 선처 없이 면허를 취소한다면 의료현장에서 핵심인력인 전공의가 사라지는 셈이다. 대학병원 한 외과 교수는 최근 의료계 집회에서 전공의가 현장을 떠나면 남은 인력이 버틸 수 있는 시한은 2주라고 언급하기도 했다.

법조계에선 처벌 가능성이 낮고 정권이 바뀔 정도로 과정이 지난한 데다 1만3000여 명 전공의를 일일이 기소하는 것이 현실적으로 가능하겠냐는 지적도 나온다.

이런 가운데 집단행동으로 번질 경우를 대비해 정부가 내놓은 비대면진료나 PA 확대는 비현실적일 뿐더러, 자가당착에도 빠진다.

정부는 전공의가 개별 사직을 집단적으로 한다면 정책에 반발한 집단행동으로 보고 불법으로 간주, 법적 대응하겠다는 입장이다. 대응 방식은 법적 근거 없이 시범사업 중인 비대면진료나 공공연한 불법인 PA 간호사로 전공의 업무를 메우겠다는 식이다. 전공의에 불법을 지적하며 법적 대응하겠단 정부가 실효성조차 불분명한 불법으로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셈이다.

이렇게 정부가 의대정원 '2000명' 증원에 사활을 건 사이, 필수의료는 쓰러졌다.

최근 두 아이의 엄마이자 임산부인 소아청소년과 4년차 전공의가 수료를 앞두고 사직 의사를 공개했다. 그는 소위 빅5로 대표되는 세브란스병원 소아청소년과 전공의 수장인 의국장이다. 

소아청소년과 전공의는 극심한 인력난에 임신 12주차 전, 분만 직전 12주 전을 제외하면 당직 근무를 선다. 통상 10개월 임신 기간에서 4개월은 당직을 서는 셈이다. 컵라면도 제 때 먹지 못하는 일상은 물론, 최근엔 50분에 걸친 환아 심폐소생술을 진행하며 내 아이가 유산되진 않을까 생각하며 처치 후 홀로 눈물을 흘리기도 했다고 말한다. 그는 "5000명 의사를 배출한들 한 명이라도 저처럼 살고 싶은 의사가 있을까"라고 되묻는다.

'돈 못 버는 호구' 소리를 듣고도 눈 앞에서 떠난 아이들 모습에 실력 있는 소아과 의사가 되겠다던 전공의는 전문의 취득 반년을 남기고 그렇게 필수의료를 떠났다. 이런 현실에선 소아청소년과 전문의 면허가 있더라도 소아 환자를 보며 살 수는 없겠다는 판단이다.

정부가 사활을 건 의대증원, 그 시작과 명분은 '필수의료 살리기'였다. 현장이 이해하지 못하는 정책을 밀어붙이는 사이 정작 실력 있는 의사가 되겠다던 필수의료 의사는 파업이 아닌 필수의료 포기를 선택했다. 파업으로 증원 규모가 500명으로 줄어도 필수의료과를 위한 정책은 없을 것 같은데, 밥그릇 싸움이란 비난까지 견디긴 괴롭다는 것.

사활을 건 정부와 의료계 힘겨루기, 정작 외줄을 타는 목숨은 밀어붙이는 정부도 막아서는 의료계도 아닌 환자 것이란 점이 아이러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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